김영헌 기자

등록 : 2017.03.15 19:56
수정 : 2017.03.15 19:56

“제주다움 사라져… 이주하려면 환상 버려야”

등록 : 2017.03.15 19:56
수정 : 2017.03.15 19:56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

‘제주 이주민의 역사’ 출간

“제주인들 겉과 달리 속정 깊어”

“이주열풍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개발 붐이 일면서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있어요. 최근 몇 년간 제주로 이주했던 사람들 중에 벌써 제주를 다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 게 현실입니다.” 27년 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 이제는 ‘제주사람’이 다 된 정은희(53)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은 제주 이주열풍에 대해 쓴 소리를 먼저 꺼냈다.

제주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1990년 직장까지 제주로 옮기며 자연스럽게 이주한 그는 초보 이주민들의 제주 정착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근 ‘제주 이주민의 역사’라는 책을 냈다.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은 제주이주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제주 이주민의 역사'라는 책을 펴냈다. 김영헌 기자

정 소장은 “30여 년전 자신이 이주할 당시만 해도 제주는 ‘느림의 미학’이 있었지만, 한라산 중산간까지 집이 들어서고 왕복 4ㆍ6차선 도로에는 차량들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요즘 제주에 예전 모습은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TV드라마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제주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고 이주한 이들이 현실에서 겪는 제주는 딴 판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준비 없는 이주에 대한 어려움은 정 소장이 이주민 256명을 만나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설문조사 결과 이직을 제외하면 제주로 이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주의 특별한 자연환경 속에서 누리는 여유로운 삶의 추구다. 하지만 정착 과정에서 높은 물가와 부동산 등의 경제적인 문제와 문화적 차이에 따른 외지인 소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이주생활을 접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 소장은 “한 이주민은 상가 임대료가 5년 사이 두 배 이상 오르자 아예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며 “집값과 물가가 낮았던 이주 초기는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정주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서먹함과 오해 등도 이주민들 정착에는 걸림돌이 되곤 한다. 정 소장은 “제주사람들이 하는 말 가운데 ‘육지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며 “이는 제주 이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이는 약 100년간 이어진 몽골의 지배와 아직도 입에 담길 꺼리는 4ㆍ3사건 등의 역사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배타적 문화다.

정 소장은 제주사람들이 겉으론 배타적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돈독한 이웃 관계 형성을 위한 별다른 방법은 없지만, 시간을 갖고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다 보면 어느새 직접 재배한 농수산물을 나눠주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사람들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그 이후부터는 가족보다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게 제주사회”라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주 이주열풍이 한 풀 꺾이고 있다”며 “제주에 대한 환상은 버리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운 후 이주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주민과 원주민이 공존하는 문화 조성을 위한 정책들을 제주사회가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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