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조직문화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에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상습야근, 비생산적 회의, 불합리한 평가방식 등으로 불통과 비효율, 불합리 등이 횡행하면서 조직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간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 명을 조사해 이 같은 내용의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진단에는 맥킨지의 조직건강도(OHI·Organizational Health Index) 분석기법이 활용됐다. 리더십, 조율ㆍ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의 37개 세부항목을 평가 점수화해 글로벌 기업 1,800개사와 비교한 방식이다. 조사대상 100개사 중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의 조직건강에 의문이 제기됐다.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수준으로 평가됐다. 진단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취약점은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외부지향성에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상습야근과 주먹구구식 일 처리, 과도한 보고,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이 나쁜 점수를 받았다.
우리 기업은 제조혁신을 통해 앞서 나가는 해외기업을 따라잡는 전통적 성공 방정식에는 익숙하지만, 지식과 창의력 리더십 등을 발휘해 급변하는 시장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글로벌 기업의 역량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달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주된 원인은 후진적 기업문화일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지시에 ‘왜(Why)’라고 묻거나 ‘아니(No)’라고 거부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르는 상명하복의 불통문화가 단적인 예로 제시됐다. 또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는 국내 기업 외국인 임원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래서야 창의력이 싹틀 토대가 없다. 유교적 전통에 덧붙여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따른 군사문화에 기업문화가 접목된 것이 배경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대로 ‘피처폰’에 머물고 있는 기업문화를 스마트폰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왔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구시대적 기업문화로는 생존과 성장이 어렵다. 아울러 기업문화의 획기적 개선에는 결국 기업 최고경영자의 인식과 의지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과 종업원을 사유물 취급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재벌 2ㆍ3세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세습경영으로는 난관을 타개할 수 없다. 한 기업과 경제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후진적 황제경영 방식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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