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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치심의 눈물

입력
2016.1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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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의 눈물이 연신 신문지상을 오르내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번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사과문을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는 떨렸다. 전날 한광옥 비서실장 앞에서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국정농단의 당사자인 최순실은 영장실질심사를 받던 법정에서 눈물을 쏟았고, 대통령 담화를 보면서 또 울었다.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검찰청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죄송합니다”라며 흐느꼈다. 그러나 정작 검사 앞에서는 혐의를 부인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 자신의 잘못된 외적 행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죄책감이다. 죄값을 치러야겠다는 양심이나 책임의식은 죄책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잘못한 뒤에 통제력을 되찾고 도덕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는 힘이다. 반면 수치심은 잘못된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때문에 겪어야 할 자존심의 상처, 사회적 관계 훼손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래서 자신의 죄가 외부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지만 일단 터지면 죄책감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는다. 수치심이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더 큰 도덕적 일탈로 빠지는 이유다.

▦ 수치심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일본이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을 ‘수치심의 문화’라고 규정해 독일의 ‘죄의 문화’와 구분했다. 양심과 죄의식에 의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서양의 기독교적 관점이라면 일본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각, 인간관계에서의 평판에 따라 가치 기준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이 역사적 과오를 그토록 기를 쓰고 부정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드러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 지금 박 대통령의 위기도 수치심만 호소할 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네 죄를 뉘우치라’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참담하다” “가슴이 찢어진다”며 수치심에 몸을 떨 뿐이다. 국정농단의 핵심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은 “대통령과 최순실 사이의 직거래” “대통령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데만 급급하다. 하다못해 장세동처럼 못난 지도자일지언정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심복 하나 없는 이 정권이 더욱 처량하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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