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에 미중 무역전쟁 ‘불똥’
中, 對美 무역흑자 줄인다며
“美 반도체 구매 늘리겠다” 제안
한국, 양국 협상에 따라 피해 예상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하락
국내 업체에 단기 파급 없겠지만
중국서 가격 인하 카드 쓸 수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고조되는 무역전쟁의 불똥이 세계 1위 한국 반도체로 튀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현지시간)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한국과 대만 반도체 수입을 줄이고 미국 반도체 구매를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민감한 통상 이슈는 종종 현지 언론을 통해 먼저 흘러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미ㆍ중간 무역전쟁을 막으려는 양국 협상 테이블에 한국 반도체 업체의 운명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7일 국내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업체들은 반도체 경기 호황과 미국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볼 때 당장 미칠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미ㆍ중간의 협상에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인텔과 퀄컴 등 보유한 시스템 반도체 강국이면서도, 한국이 세계 1ㆍ2위 업체를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약 70%를 구매하는 최대 시장이라, 중국이 반도체 수입국을 미국으로 돌린다면 한국의 반도체 업체는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일단 업계에서는 세계 1ㆍ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이 미국업체와 격차가 커, 미ㆍ중 간 협상이 성사되더라도 단기간 파급력은 미미할 것으로 본다. 마이크론은 스마트폰용 메모리 위주라 서버용 D램 시장에는 아직 진입을 못한 데다 시장 점유율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라면, 중국이 미국 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방안이 실효성이 있겠지만, 당분간 전 세계적으로 D램 품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자업체들로서는 물량 확보가 우선이지 공급업체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반도체 기업에서는 “만들면 팔려 어느 기업이든 창고에 D램 재고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메모리 반도체를 완제품에 넣어야 기업들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높은 품질의 제품 구입을 위해 복수의 공급처를 두는 게 상식이다. 완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중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품질이 우수한 한국 기업 제품 대신 미국 반도체만 공급받는다면 해당 중국기업의 경쟁력 저하는 피할 수 없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명예 연구위원은 “중국이 한국 반도체를 많이 쓴다지만 들여다보면 삼성전자는 시안(西安)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중국 쑤저우(蘇州)공장에서는 패키징(후처리)을 해 현지에 제품을 공급한다”며 “반도체 생산량이 적은 미국 본토제품이 중국에 수출되더라도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점쳐지지만 장기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점이 되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또 반도체 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중국이 한국 반도체를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이용해 한국업체와 협상력을 높이려 할 수도 있다. 중국 언론들은 연초부터 ‘한국 반도체 가격이 높다’는 취지의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미ㆍ중 간 반도체 협상이 프로세서든, 메모리든 국내 산업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없거나 있어도 미미할 것”이라며 “다만 중국이 미중 협상을 한국 반도체 가격을 내리는 카드로 쓸 여지는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려 한다는 소식에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26일보다 0.60% 하락한 249만9,000원에 장을 마쳤고 SK하이닉스는 3.10% 떨어진 8만1,400원에 마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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