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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대형아파트 종말론

입력
2016.0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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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아파트의 입체도
한 대형 아파트의 입체도

9년 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에 있는 한 대형아파트(전용면적 133㎡)를 9억2,000만원에 샀던 50대 이모씨는 지금도 밤잠을 설칩니다.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내리막길을 걷더니 현재는 시세가 2억원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필 아파트 가격이 꼭지점일 때 집을 산 것이지요. 물론 대출도 껴서 말입니다. 그는 ‘원금만큼만 회복하면 팔아버려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버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긴 올까요? 이것은 이씨뿐 아니라 대형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일 겁니다.

요즘 부동산 생태계를 보면 ‘대형 아파트 종말론’이 나올 만 합니다. 상당수 분양 광고는 ‘100% 중소형으로만 구성됐습니다’ 등 작은 아파트를 찬양하는 문구로 도배가 돼 있습니다. 광고 첫 줄에서 강조하는 건 그만큼 수요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란 뜻이겠지요. 건설사 입장에서는 매력 포인트를 내세우는 것일 테고요.

실제 아파트 시장은 중소형 아파트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작년 전국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59㎡ 이하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은 14만2,654건으로 전년(12만4,590건)보다 14.5%나 늘었습니다. 전용 85㎡ 초과~109㎡ 이하(5.7%), 전용 109㎡ 초과(9.1%)보다 거래량이 월등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큰 집을 좋은 집과 동일시하던 ‘과시형’ 소비패턴에서 이처럼 작은 집을 선호하는 ‘실속형’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그 전까지는 활황기에 집값이 오르면, 전용 85㎡를 초과하는 대형아파트가 중소형 아파트보다 2배 넘는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투자상품으로서 가치가 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파트 한 채만 자가로 소유하면 노후 걱정 없다는 얘기가 나왔겠지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부동산 시장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여기에 인구구조가 급속히 핵가족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 통계청 등에 따르면 중대형 아파트가 필요한 4인 가구 이상 가구수는 2010년 31%에서 2015년엔 25%로 낮아졌고 2025년엔 17%로 더 줄어들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최근 공급되는 아파트는 발코니 확장과 특화설계 등으로 서비스공간이 많기도 합니다. 대형 아파트보다 싸게 사고, 그러면서도 실제공간은 공급면적보다 더 넓게 쓸 수 있으니 중소형으로 몰리는 것이지요. 이런 인기 덕분인지 가격 상승률도 소형으로 갈수록 더 높아집니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작년 아파트값 상승률을 보면 ▦전용 60㎡ 이하는 5.56% ▦60㎡ 초과~85㎡ 이하는 4.71% ▦85㎡ 초과~102㎡ 이하는 3.98% ▦102㎡ 초과~135㎡ 이하는 3.88% ▦135㎡ 초과는 2.85%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기가 없다 못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린 대형아파트는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 걸까요.

일단 매년 입주 물량을 보면 대형아파트가 급속히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용 85㎡ 초과 대형아파트는 2010년 10만2,491가구로 정점을 찍고는 해마다 줄어 2013년부터는 2만~3만 가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전용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2014년 이후 23만 가구 이상 물량이 풀리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역대 최대치인 31만 가구가 입주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물건이 줄면 ‘희소성’ 때문에 값어치가 올라가는 것 또한 시장의 원리. 이것이 대형아파트에도 적용이 될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대답하지만 애석하게도 상당수는 “손실회복에 미련 갖지 말고 주택거래 시장이 회복할 때 매도 의사결정을 하라”(이미윤 부동산114 책임연구원)고 조언합니다. 매매 거래가 활발한 시기마저 놓치면 영영 매도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특히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등에 있는 대형 아파트는 앞으로도 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다고 합니다. 분당이나 용인 등을 예로 들면, 1기 신도시 분당은 주변에 판교나 위례신도시 등 대체주거지가 있는 탓에 부각되기가 쉽지 않고, 용인은 중소형 아파트라고 해도 미분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대형아파트는 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형아파트가 살아남는 곳은 극히 일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강남구ㆍ서초구,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 등 학군이 살아 있거나 부촌인 곳들만이 경쟁력이 있을 것(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이라고 합니다. 철저히 투자자 시각에서 보자면 교육, 고급주택에서의 주거 등 뚜렷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대형아파트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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