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어떻든 의원 증원은 실현성 없어
이 위기상황에 정치담론, 국민 짜증만
현 정원에서 선거구 조정만 간단하게
19대 총선을 코 앞에 둔 3년 전도 선거구 획정문제로 시끄러웠다. 299석 내에서 세종시 증설에 따른 선거구 조정이 여의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했다. “이번엔 시간 없으니 그냥 세종시만 늘려서 300명으로 갑시다.” 여야 모두 화들짝 손사래 쳤다.
“의석을 하나라도 늘리면 국민이 싫어할 텐데….” “의원들 일 안 한다고 욕 먹는 판에 무슨 염치로.” 짐짓 몸을 꼰 건 딱 그날만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서 여야 공히 덥석 받았다. “선관위가 그리 하라는데야.” 그래서 의원 수 300이 됐다. 이 일로 선관위는 여론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번엔 대놓고 늘리겠단다. 한 석에도 면구스러워하더니 통 크게 69~90석 증원을 말한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줄이라고 한 결정에 선관위 제안이 불을 지폈다. 선거구 조정할 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어떨지, 그 경우 지역구를 20%쯤 확 줄여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 200, 100명으로 해서 300명에 맞춰보라고. 정치인이 손해 볼 리 없다. 과연, 지역구 감축은 쏙 빼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2대1 비율만 냉큼 챙겨 계산한 게 +69석이다.
사실 의원 증원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학자들에게서도 많이 나왔던 얘기다. 인구 대비 의원 수가 적긴 한데다, 지역구도 완화를 위해선 영ㆍ호남의 독점적 정당구조를 깨야 한다는 뜻에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앞장 선 건 호남에서의 새누리당보다 자기네 영남 득표율이 높은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호남신당 견제도 염두에 있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반대도 같은 셈법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국민들 눈에 꽂힌 건 의원 수 증가다. 일하려 해도 손이 부족해야 사람 늘릴 명분이 선다. 하릴없이 매양 저들끼리 싸움질이나 하면서도 부와 특권을 누리는 모습에 열불이 나는 판이었다. 줄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경실련의 19대 국회 전반 평가도 ‘법안 질 저하, 전문성ㆍ성실성 저조’ 등 국민 일반의 느낌 그대로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행정부를 확실히 견제하기 위해 의원 수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의 독자성을 갖지 못한 채 당론이나 지도부 결정에 묶이고 더욱이 대통령 한마디에 다들 싹 풀 죽는, 영혼 없는 의원들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랴.
비례대표 증원론에도 함정이 적지 않다. 비례대표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 추천 지명된 이들이다. 보스정치나 계파정치를 도리어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국민 검증과정이 없어 돌출 부적합인물을 걸러낼 방법도 마땅치 않다. 진보진영에 치명상을 입힌 이석기도 비례대표였다.
비례대표의 강점으로 거론되는 다양한 의견수렴과 분야별 전문성 제고도 결국엔 의원 개개인의 역량과 성의에 달렸다. 나아가 의원들의 창의와 개성을 죽이고 정치공학의 도구로나 소모하는 정당 운영방식의 문제다. 사실 여의도에 발 들여놓기 전까지의 학식 전문성 경력 등을 보면 우리 의원들도 간단치 않다. 독일 예만 자주 들어 그렇지, 미국 영국 등 아예 비례대표 없는 선진국도 여럿이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여러 방안을 꼼꼼히 따져볼 시간도 필요하다. 갑자기 지선(至善)의 목표로 삼아 추진할 일은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할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선 이런저런 문제가 파생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보다 차라리 87년 이전 경험했던 중선거구제가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일임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이런 정치적 논의의 적기가 아니다. 보수의 상투적인 겁주기로만 볼 게 아니다. 진보 쪽에서조차 국가경쟁력 추락, 경제돌파구 폐색 등으로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판국이다. 정치인들이 이 위기국면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 망정 저들만의 이해에나 정신 파는 모양새가 딱하다. 그러고 보니 의원 정수 늘리기만은 정말 안 되겠다. 의원들마다 다툴 이해만 더 많아질 테므로.
그러므로, 이번에는 300석 내에서 선거구 조정만 가장 간단하게 하는 게 맞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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