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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재산 노린 강제입원’ 막장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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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재산 노린 강제입원’ 막장 사라질까

입력
2017.05.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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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강화∙참여인원 다변화

소속 다른 의사 2명이 입원 판단

1개월내 법조인 참여 적합성 심사

계속 입원 심사는 3개월로 단축

-인권 침해 최소화 기대감

환자 10명중 6명은 강제입원

“억지로 구속, 거부감 커” 호소

현재는 보호자∙전문의 동의만

-대규모 퇴원설은 괴담일 뿐

“자∙타해 위험환자 강제입원 가능”

복지부, 의료계 일각의 우려 불식

심사인력 확충 등 보완해야

지난 18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최성구(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이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오른쪽 줄)이 겪은 증상과 치료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 18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최성구(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이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오른쪽 줄)이 겪은 증상과 치료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2013년 박모(당시 57세)씨는 자신의 집에서 남자 3명에게 손발이 묶인 채 정신병원에 실려 갔다. 멀쩡한 상태에서 입원에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약물 투여, 격리, 강박 등이 이어졌다. 박씨의 재산을 노린 딸의 범행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이 아니다. 재산 다툼 등으로 강제입원 범행은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들 10명 중 6명 이상은 본인 의사와 상관 없는 강제입원이다.

문제가 끊이지 않자 지난해 5월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더 어렵게 하고, 입원 환자는 보다 쉽게 퇴원할 수 있도록 했다. 시행일은 이달 30일. 인권 침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팽배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정신질환자들이 대거 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괴담 같은 우려를 내놓는다.

무엇이 바뀌나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절차 개선, 정신질환자 차별 해소 등의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ㆍ구 정신보건법)이 30일 시행된다. 지금까지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키기 위해서는 보호자 2명과 정신과 전문의 1명의 동의만 있으면 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문의 2명이 대면 진단을 통해 입원 소견을 밝혀야만 2주 이상 입원시킬 수 있다. 전문의 2명은 서로 다른 병원 소속이어야 한다. 또 강제 입원 환자는 입원 1개월 이내 전문의, 법조인, 정신질환자의 가족 등으로 구성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계속 입원 또는 퇴원이 결정된다. 원래 전문의 1명이 6개월마다 했던 ‘계속 입원 심사’도 전문의 2명이 3개월 주기(3번째 심사부터는 6개월 주기)로 실시하도록 했다. 현재 강제 입원 중인 환자 4만여명 역시 심사 대상이다.

강제입원 선진국 4,5배

기자가 18일 찾은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전 국립정신병원)엔 중증 조현병ㆍ우울증 환자나 도박 중독자 100여명이 입원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조현병 남성 환자 A씨는 강제입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부분의 정신과는 시설이 열악하고 환자들은 너무나 답답함을 느낀다”며 “강제입원을 당할 때 억지로 구속당하는 심정을 갖고 있어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은 “지방의 몇몇 정신병원들은 환자들이 침대가 아닌 마루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다”고 했다.

이미 선진국들은 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려면 전문의 외에 법원이나 독립된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한다. 이런 제도의 차이는 강제 입원율 격차로 나타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정신병원 입원자 수는 총 6만9,232명이고, 이중 강제 입원 환자는 61.6%인 4만2,684명에 달한다. 독일(17.0%ㆍ이하 2014년 기준)이나 영국(13.5%) 이탈리아(12.0%)보다 4, 5배나 높다.

의사들은 불만, 보완책 필요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제도적 보완책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차기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앞으로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하지만, 학회 조사 결과 국공립병원조차 다른 정신과병원에 내보낼 인력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며 “환자 상당수가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지 않은 기도원 등 열악한 요양시설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도 반발의 원인이다. 한 정신병원 원장은 “정신병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가두고 있다는 욕을 먹고 있다”며 “억울하게 욕을 먹느니 환자가 다 빠져나가도 법대로 입퇴원 조건을 적용하겠다는 병원들도 많다”고 전했다.

반면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있는 환자는 바뀐 법에서도 강제 입원 시킬 수 있다”며 “일각의 우려처럼 대규모 퇴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바꿔 나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성구 부장은 “정신질환자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일반인보다 낮고, 조현병으로만 좁혀 보면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이마저도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범죄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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