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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개헌이 억울한 구속 늘리는 방향이어서야

입력
2017.03.2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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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정국은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대통령이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던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거듭나게 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대선이 5월9일로 다가오는 가운데, 정치권은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들어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와 맞물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 전 개헌을 목표로 구체적 개헌안 발의도 논의되고 있다. 30년 만의 개헌논의가 조기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자칫 졸속으로, 그것도 국민 전체의 이익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금번 개헌 때 검찰권한 분산을 위하여 헌법에 규정된 검사 영장청구권 규정을 삭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고 한다. 즉 현행 헌법에 의하면 사법경찰관은 영장을 신청할 수 없고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제한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법률 전공자로서, 그리고 언제든지 뜻하지 않게 수사를 받을 수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헌법 규정, 특히 기본권 규정이 특정 기관의 권한을 늘리거나 줄이는 관점에서 그 존폐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정도로 개헌을 논하기에는 헌법 이념은 너무 크고 무겁다. 헌법의 최고 이념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고, 모든 헌법 규정은 그 목적을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도 그 존폐를 논의할 때에는 이 규정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편의상 흔히 ‘검사 영장청구권 규정’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실제 의미는, 경찰은 검사에게 영장을 신청하고, 검사의 심사를 거친 다음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사기관인 경찰이 국민을 상대로 체포, 구속,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하고자 할 경우 검사와 판사에 의한 이중 심사를 모두 통과하라는 의미이다. 어떤 사안이든 한 단계보다는 두 단계의 관문을 거치도록 하는 게 보다 까다롭고 엄격하게 심사할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런 상식이 강제수사와 헌법에 반영된 게 바로 검사 영장청구권 규정이다. 헌법재판소(96헌바28결정)도 “수사단계에서 영장신청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인 검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다른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영장 신청을 막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고자 함”이 검사 영장청구권 규정의 취지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규정을 삭제하자는 주장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안전장치를 하나만 남기자는 것과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권 비대화를 우려한다.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권’을 삭제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거기서 비롯한 듯하다. 그러나 검사에게 영장 청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은 부당한 신체 구속이나 압수ㆍ수색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이토록 신성한 헌법 규정이 수사기관 간 권한다툼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1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근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이념이다.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권 규정을 삭제하자는 것은 결국 경찰의 구속수사를 보다 쉽게 허용하자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무고하게 구속되는 국민이 지금보다 단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그것은 분명 인권보호의 후퇴이고 개악이다. 더구나 검사는 2,000명인데, 경찰은 14만 명이다.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가진 경찰에게 구속수사가 쉽게 허용된다면 국민에게 돌아올 폐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그 잠재적 피해자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억울하게 구속되었다는 사람, 억울하게 재판 받는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넘친다. 30년 만의 개헌이 억울한 구속을 줄이기는커녕 늘리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될 일이다. 억울한 구속을 줄이기 위해서는 통제에 통제를 더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만약 개헌을 한다면, 있던 안전 장치를 뺄 것이 아니라, 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이 원하는 개헌이다.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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