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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24)모든 게 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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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24)모든 게 술 때문입니다

입력
200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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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25일 밤 나는 박종환(朴鍾煥) 감독과 함께 서울 연희동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집을 방문했다.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창원(昌元)이를 가슴에 묻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던 박 감독이 불쑥 “전 대통령 집에 가자”고 한 것이었다.

그 당시는 이미 전 대통령과의 구원(舊怨) 따위는 없었다.

한때는 비슷한 외모 때문에 방송 출연도 정지 당하고, 밤무대에서 전 대통령 내외를 코미디 소재로 삼기도 했지만 그때는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

박 감독의 권유로 89년 겨울 전 대통령의 유배지였던 백담사를 찾아간 이후 모든 한은 사라진 뒤였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전 대통령은 아들 잃은 아비를 붉은 눈시울로 맞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지. 자식의 경우도 다를 바 없을 거야. 없던 권력도 잡았다 놓으니 마음 달래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자식을 잃었으니 위로할 말이 있겠나. 그러나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부처님 말씀을 새기고 새 출발해야지.”

그러면서 가장 좋아하고 가까운 사람에게만 내놓는다는 17년산 발렌타인을 따라주었다.

나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위스키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옆에 있던 박 감독도 목이 메이는 듯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자꾸 머리 속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랬다.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은 그 해 11월22일 새벽 아들을 잃었을 때 처음 느꼈다.

스물 여덟 살 한창 나이에 어처구니 없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버릇없는 코미디언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엄하게 키웠던 아들이 먼저 죽다니…. 따지고 보면 모두 술장사를 하는 아비 탓이었다.

미국 버지니아 위슬리언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이었던 창원이는 그 해 9월 결혼을 위해 귀국했다.

나는 창원이가 이제 차를 가져도 될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로얄프린스 승용차를 사줬고, 대신 월부금 25만원은 아들이 내게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자기 차는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사고 전날 창원이가 “돈이 좀 모자란다”며 내게 월부금을 내달라고 했다. 나는 “유학까지 갔다 온 놈이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날 저녁 창원이는 평소 형처럼 따르던 내 운전기사와 다음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차를 타고 가던 귀가 길에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아들을 술 때문에 저 세상으로 보냈는데 아비는 술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평소 내 업소 앞에서는 엄하게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이 왜 창원이 차는 단속을 못했는지 원망스러웠다. 술도, 차도 모두 싫었다.

아버지도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 좌익에게 테러를 당한 후 거의 매일 술로 삶의 아픔을 달래던 아버지셨다.

1970년 작고하실 때는 병명을 확실히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음으로 인한 위암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것도 역시 술 때문이다. 몇 해 전 평소 존경하던 한 기업인이 돌아가신 날, 미망인이 문상 온 술 친구들에게 내뱉은 말이 옳았다.

“저 놈들이 살인범인데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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