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기획?지휘자 처벌 조항 만들어
정권에 비판적인 집회 기획자를
‘위험 인물’로 옭아맬 수 있고
민감한 정보 수집도 가능해져
야 3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2일 끝나면서 논란의 중심이었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느슨했던 대테러 대응의 빈 곳이 일정 부분 메워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법안이 수정 없이 국회를 통과해 야당이 집중적으로 성토했던 국가정보원의 권한 남용 논란은 법 시행 과정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2월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은 전세계적인 테러 위험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테러방지를 위한 국가의 책무와 필요한 사항이 법률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성안됐다. 우리 국회에서는 2001년 미국의 9ㆍ11 테러를 계기로 테러방지법이 처음 발의됐지만, 15년 동안 시민단체의 반발과 여야의 입장차이 등으로 매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37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번 테러방지법은 테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테러발생 시 신고 및 보고, 사전ㆍ사후 대응방식을 체계화했다. 특히 그동안 국제테러범이 국내에 입국하더라도 단순 퇴거 외에는 처벌할 수 없었던 법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테러를 기획 또는 지휘하는 자에 대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는 등의 처벌 조항(제34조)도 담았다.
야당이 특히 문제 삼은 부분은 국정원에 대테러센터를 두고,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정보ㆍ금융거래정보ㆍ통신자료 등의 정보수집권한까지 주는 내용이었다.‘국정원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돼 상시적 시민 감시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병석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지만, 야당의 반대 입장은 완고했다.
새누리당은 대테러센터를 국민안전처에 두자는 야당안 대신 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으로 절충하고, 정보수집권한을 국정원에 그대로 두면서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두고 권한 오남용 시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수정안(주호영 국회 정보위원장 발의)을 제시했다. 하지만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여야는 ‘8박 9일의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대치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법안이 통과하자 “최소한의 테러 대비는 완성했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을 ‘국민감시법’이라고 명명한 뒤 “20대 총선 승리 후 테러방지법 전면개정에 나설 것임을 국민 앞에 다짐한다”는 결의문을 낭독하며 전의를 다졌다. 시민사회진영에서도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이 명백해 개정 운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동법 제2조가 테러위험인물을 ‘테러단체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ㆍ기부, 기타 테러예비ㆍ음모ㆍ선전ㆍ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보수집권한을 가진 국정원이 필요에 따라 이 조항을 기반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집회ㆍ시위 기획자를 옭아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법 제9조 3항에서 국가정보원장이 민감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 등을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논란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이 특정인의 노동조합ㆍ정당의 가입ㆍ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정보 등을 수집하고, 위치정보도 포털사이트나 SNS 운영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우려한다. 법 제4조가 ‘대테러활동에 관해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한다’고 못 박은 것 역시 논란의 한 축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은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주장한 국정원 권한 남용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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