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선다는 생각에 감격했던 1987년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기득권이 얼마나 굳건한지 깨달았습니다. 학생운동은 죽어가고 재벌은 공고화됐습니다.”
노(老)교수의 강건한 목소리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30년 전 거리에서 농성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방학을 반납하고 광장을 지키겠다”고 했다.
서울대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70여명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이라는 깃발 아래 뭉쳤다. 시국과 관련한 서울대 교수들의 단체 행동은 60년 4ㆍ19혁명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전국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교수들은 박 대통령 집권 기간 상아탑의 민주주의가 파괴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명환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학재정사업과 국ㆍ공립대 총장직선제 폐지로 대학 자율성이 크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비선실세 딸의 입시ㆍ학사비리를 교훈 삼아 대학들도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참석자들은 지성을 대표해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의를 열망하는 시민으로서 광장에 섰다. 공대 소속 김모(59) 교수는 “우리도 결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 현장에서 소명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배균 지리교육과 교수는 “서울대 교수 750명이 시국선언문에 서명한 이유도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과 같은 맥락”이라며 “박 대통령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한 70년대 권위주의로 한국사회를 퇴행시켰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범죄자 박근혜는 모든 권력을 국민에게 봉환하고 사실상 탄핵된 총리와 내각, 청와대비서실, 새누리당 모두 즉각 해산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들과 청와대로 행진도 함께 하며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굳게 다졌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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