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에 입찰 담합을 벌인 건설사들은 적발을 피하고 낙찰가를 높이기 위해 전례 없는 치밀함을 보였던 것으로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2009년 최저가 낙찰제 13개 공구의 입찰 담합은 대림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이른바 ‘빅 7사’가 주도했다. 이들은 입찰 공고 이전인 2009년 7월 금호산업 남광토건 등 14개사에 ‘공구 나눠먹기’를 제안했다. 한 업체가 최대 1개 공구의 사업만 낙찰 받을 수 있는 ‘1사 1공구’ 원칙이 적용됐기 때문. 건설사들은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추첨을 통해 낙찰 예정자를 선정했다. 대신 추첨에서 떨어지면 이듬해 발주될 철도 최저가낙찰제 공사에서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빅 7사’와 낙찰 예정자 등은 사전 입찰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건설사 7곳에도 ‘들러리’를 요청했다. 입찰 담합은 전체 입찰자 중 일부 업체들끼리만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입찰 참가자 모두가 담합에 가담한 것. 이렇게 모든 업체가 가담하면서 낙찰가는 훨씬 높아졌다. 실제 이 공사의 예정가 대비 낙찰률은 최저가 낙찰제 평균 낙찰률(73%)보다 훨씬 높은 78.5%에 달했다.
낙찰자 추첨에서 심지어 ‘사다리 타기’ 방식도 동원됐다. 턴키(Turn-key) 방식으로 발주된 철도 차량기지 건설공사에 참여한 대림산업 대우건설 및 삼성물산 관계자들은 2010년 3월 서울 광화문역 근처 카페에서 사다리 타기로 각 사의 투찰율을 정했다. 이어 그 해 4월 경쟁사들이 사전 합의대로 투찰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직원들을 보내 경쟁사의 투찰 과정을 참관하게 했다.
호남고속철도 입찰 담합은 담합 액수와 수법 면에서 역대 최악의 입찰 담합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됐다. 건설업계는 가뜩이나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잇단 과징금 폭탄에 울상을 짓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당초에 최대 1조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을 감안하면 규모가 다소 줄기는 했지만 올해만 네 번째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는 점에서 경영에 미칠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일부 잘못된 관행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지나친 제재를 가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소송에 나설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단일 사업을 여러 개의 공구로 분할해 동시 발주하면서 1개사 1공구로 수주를 제한하는 등 정부가 업체 간의 담합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잇따른 제재로 건설사들의 공공공사 입찰이 제한되고 해외수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과징금처분 취소소송 등의 법적 대응과 함께 건설협회 차원에서 입찰 제도의 개선작업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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