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한 사람의 공천배제(컷오프)가 이토록 화제를 모은 적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국회의원 배지의 수명을 연장할 기회를 포기했지만 ‘전국구 스타’가 됐다. 각지에서 지원 유세를 와달라는 요청이 수 십 건을 넘어섰다. 그는 자신에 대한 컷오프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정무적 오판이라 단정하며 “불은 내가 지른 게 아니지만 총선 승리만 생각하고 전국을 다니며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난 19일 인터뷰했다. 그는 가족과 지지자들 얘기를 꺼내려다 세 차례 흐느꼈다. 겸손을 지키겠다는 약속도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당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단 한 번도 탈당을 생각한 적 없다”고 잘랐다. 대신 “아내와 아이들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세간의 비난 때문에 맘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이 참에 정치를 그만두고 가족을 위해 살자 다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컷오프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접하면서 “정치를 그만둔다는 건 이 분들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에 마음을 고쳐 먹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16일 당의 컷오프 결정을 받아들이고 당에 남겠다고 선언하며 ‘인간 김종인에게는 서운하더라도 대표 김종인에게는 서운해 하지 말자’고 했다. 그는 “실제로 서운하다”며 “그것까지 부정하고 대표를 비판 말라고 하면 제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김 대표나 지도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떠드는 건 며칠 지나면 조용해 진다고 보고 컷오프를 강행했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며 “이번 선거는 SNS 선거고 컷오프에 반발한 핵심 지지층이 이탈해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지난 17일 김 대표를 만났다고 한다. 그는 “내 첫 인사는 ‘탈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며 “김 대표가 미안하다며 도와달라고 하길래, 내가 당의 주인이고 도와달라 안 하셔도 당을 바로잡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두 가지 목표가 생겼다. 자신의 지역구(서울 마포을)에 전략 공천을 받은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당선과 당이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그는 “손 위원장은 비례대표로 추천 받을 수 있음에도 성난 지지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보탬이 되겠다며 지역구 출마의 가시밭길을 택했다”며 “밤을 새워서라도 내 선거 때 이상으로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동료 의원으로부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정 의원은 “벌써 가기로 한 곳이 전국에 50곳 가까이 되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꼭 와달라는데 어찌 거절하겠나”라며 화난 지지자들을 달래는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다.
평소 자기자랑 잘 하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컷오프를 겪으며 많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내 이름 ‘정청래’를 나조차 함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고 겸손함을 지키며 상황을 객관화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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