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23일 뉴욕에서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반도에서의 핵전쟁 연습을 중단하면 우리도 핵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례합동군사훈련을 핵실험 중단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리 외무상은 앞서 유엔본부에서 열린 ‘2030 지속가능 개발목표’ 고위급 회의 기조연설에서도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 뿐”이라며 핵개발의 정당성만 주장했다.
리 외무상이 유엔총회가 아닌 유엔 실무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한다고 했을 때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역대 가장 강도 높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 국면을 이끌어낼 만한 유화 제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러나 역시 착각이었다. 리 외무상은 회의의 성격과도 맞지 않은 핵개발 논리만 강변하는가 하면 한반도 위기의 책임을 한미 군사훈련에 돌리는 궤변으로 일관해 다른 참가국의 외면을 받았다. 리 외무상의 발언이 기대했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동이 무산된 데 따른 화풀이인지, 아니면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핵 위협에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핵활동 동결 등 한미가 요구하는 대화 조건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거듭 확인됐다는 점이다.
다음달 36년만의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북한은 도발의 수위를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언제든 5차 핵실험을 감행할 준비를 마친 징후가 잇따르고, 어제는 김정은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발사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군 당국의 분석으로는 2~3년 내 북한의 SLBM 실전배치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5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핵탄두 소형화 폭발시험일 가능성이 커 이에 성공할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을 군사 무기화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 북한의 핵 도발은 단순한 대미협상용이 아니라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적 행보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핵실험의 빌미로 내세우는 한편으로 남남갈등이나 한미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위장 대화공세를 적극화할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제재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가지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함에 따라 커지는 국내 핵무장 목소리다. 남북 간 문제를 떠나 동북아 안보상황 등에 비추어 핵무장이 현실적 대안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근본적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한미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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