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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너도 후보 나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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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너도 후보 나도 후보

입력
2012.06.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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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수엑스포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준비 현장을 다녀오는 길에 보니 산야가 온통 하얀 밤꽃 투성이다. 특히 밤 주산지인 공주의 천안_논산간 고속도로 주변은 밤꽃으로 뒤덮인 산과 계곡이 이어져 장관을 연출했다. 특유의 향기를 민망해 하는 이들도 없지 않으나 6월의 산하는 밤꽃으로 더욱 싱그럽고 원초적 생명력이 넘친다. 누가 뭐래도 밤꽃 향기는 6월을 대표하는 향기다.

밤나무 이름이 붙었지만 밤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있다.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다. 우리 식물 이름엔'너도'혹은'나도'라는 접두사가 붙는 것들이 꽤 있다.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너도양지꽃 나도양지꽃 등등. 여기엔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너도'가 붙으면'나도'가 붙은 것에 비해 본래 식물에 가깝다. 너도밤나무는 나도밤나무보다 밤나무를 더 닮았다.

너도밤나무는 "그래, 너 정도면 밤나무로 봐줄 만하다"고 남이 인정해 준 경우고, 나도밤나무는 비슷하지만 남이 보기엔 아닌데 스스로 밤나무라고 우기는 꼴이다. 울릉도 특산 너도밤나무는 비릿한 향, 열매 맛이 밤나무와 비슷하다. 가로수와 공원수로 많이 심는 칠엽수, 즉 마로니에는 열매만 빼고는 도무지 밤나무 같지 않은데 나도밤나무과다. 식물의 유사성과 특징을 예리하게 관찰해 이름을 붙인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생뚱맞게 밤나무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요즘 속속 출마를 선언하는 대선주자들 얘기를 하고 위해서다. 어떤 주자는 "그래 당신 정도면 충분히 출마 자격이 있어, 대선후보라고 불러 줄만 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지지도나 인지도, 자격 등 어느 면을 봐도 아닌 주자들도 있다. 특히 반이나 남은 임기를 팽개치고 뛰어드는 광역단체장들에 대해선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앞선다.

하지만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알기 어렵다. 2002년 1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개시 직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를 밑돌았다. 관점에 따라'너도 후보'와'나도 후보' 판정이 달라질 수 있다. 밤나무뿐 아니라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가 있어 생태계의 다양성이 풍부해진다. 정치생태계도 비슷하다. 다양한 주자들이 각자의 정체성과 비전을 갖고 경쟁할 때 다양성을 품은 정당의 생명력은 커지게 마련이다. 흥행 잠재력은 여기서 비롯된다.

총선패배와 종북 논란, 야권연대 균열로 의기소침했던 민주당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밤나무급 주자 손학규, 문재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대권 재도전을 노리는 정동영도 곧 가세할 태세다. 정세균 김두관 김영환 등 너도밤나무급 주자들은 인생역정 스토리가 풍부해 텔링만 잘 하면 언제든지 밤나무급으로 뛰어오를 잠재력을 지녔다.

조경태 의원은 야당 불모지 부산에서 3선을 달성한 상징성을 앞세워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했다. 박준영 전남지사, 당권-대권 족쇄에 묶여있는 박영선 김부겸 이인영 등도 너도밤나급, 나도밤나급을 넘나드는 주자들이다. 자족과 분수를 지켰으면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조차도 민주당 정치생태계의 다양성에 일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에 비하면 새누리당의 정치생태계는 단조롭다. 물론 이 당에도 밤나무와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급 주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세론을 구가하는 박근혜 밤나무 그늘이 워낙 넓은 탓에 다른 나무들은 햇빛과 영양분을 못 받아 시들시들하다. 이들은 햇빛경쟁 여건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의 광대한 숲은 한때 미국밤나무(나도밤나무의 일종)가 지배했다. 특정 화학물질을 분비해 다른 식물을 죽이는 타감작용(알렐로파시)이 그 번성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미국밤나무는 유럽에서 옮겨온 병해충으로 일시에 절멸하고 말았다. 숲의 다양성 부족으로 병충해 완충과 적응 시간을 벌 수 없었던 탓이다.

새누리당 정치생태계의 다양성 부족도 유사한 비극을 부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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