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예상 넘는 발언 수위 이어지자
朴, 간간이 쳐다보며 메모하기도
김무성은 조정자 역할에 충실
朴 vs 文, 대선 이후 첫 회동서 기싸움 치열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간의 올해 첫 회동은 예상대로 ‘기싸움’의 성격이 강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 명운을 걸고 맞붙었던 박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박근혜 vs 문재인’… 대선 후 첫 만남부터 살얼음판
2년 3개월만에 이뤄진 박 대통령과 문 대표의 공식 회동은 초반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였다. 오후 3시5분쯤 접견실에서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문 대표는 “(중동)순방 뒤라 피곤하실 텐데…”라며 초청에 사의를 표했고, 박 대통령도 “아직 시차 때문에 그런데 열심히 극복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문 대표의 취임을 축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회동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중동 순방 결과를 설명한 뒤 “제2의 중동 붐이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져 경제 재도약의 원동력이 됐으면 한다”며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관련 법안들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예측 가능한 의례적인 인사말 수준이었다.
그런데 문 대표는 전혀 달랐다. 서류봉투에서 A4 용지를 꺼내든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의 면전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분야 대선공약 파기를 비판한 뒤 “정부의 경제정책이 국민의 삶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잘라 말했다. 현 경제상황을 ‘총체적 위기’로 규정하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4대 민생과제 해결도 촉구했다. 연내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엔 “오늘 회담이 국민을 섬기는 정치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시종일관 작심발언이었다.
문 대표의 발언 수위가 예상 외로 세자 박 대통령은 간간이 문 대표의 얼굴을 쳐다봤고, ‘실패’나 ‘파기’ 등의 단어가 나올 때는 고개를 숙이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크게 부를 것”… 金, 완충역 자임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 문 대표 사이를 원만하게 아우르는 조정자 역할에 충실했다. 그는 냉랭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문 대표는 이전에 4년이나 청와대에 계셨는데 국정의 넓고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간 다 못한 개혁이 있으면 같이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하자”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문 대표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곧바로 “제가 참석해서 크게 부르겠다”고 화답했다. 이 곡을 공식적인 5ㆍ18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게 새정치연합의 오랜 숙원 중 하나임을 감안한 것으로 이 역시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여권 내에선 김 대표가 이날 회동에서 날선 비판이나 대립각 없이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소통에 힘쓰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점을 평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시간 50분간의 회동이 전반적으로 무겁게 진행된 탓인지 청와대와 여야의 공식 브리핑이 나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식적인 3자 회동이 끝난 뒤 여야 대표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실무진을 배석시킨 가운데 2시간에 걸쳐 공동발표문을 조율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나온 발표문조차 ‘알멩이’보다는 이견 차이가 도드라진 경우가 많았다. 3자 모두 성과 없는 회동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함과 동시에 추가 회동을 위한 모멘텀의 필요성에 공감한 결과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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