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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공동체는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 훈련하는 장

입력
2016.01.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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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기’에서 ‘함께 읽기’로 사회적 독서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일보가 격주 수요일마다 ‘책, 공동체를 꿈꾸다’를 연재하며 소개하는 전국의 책 읽기 모임은 단순한 취미나 스펙 쌓기가 아니라 내 삶의 조건을 고민하고 더불어 살기를 꿈꾸는 과정으로서의 책 읽기, 그것을 실천하는 공동체의 몸짓을 보여준다. 제주도로 이주한 이들이 제주에 관한 책읽기로 모인 ‘남원 북클럽’(2015년 6월 17일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에서 14개의 모임을 소개했다. 35년 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모임 상록독서회를 비롯해 여러 해 이상 이어온 모임들이다. 전 국민 누구나 독서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출발한 연재를 중간 결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30일 좌담을 마련했다. 필자 장은수씨, 이번 연재를 공동기획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안찬수 사무처장, 도서관운동가인 오혜자 청주 초롱이네도서관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연재는 새해에도 계속된다.

독서공동체 운동의 현재를 점검하는 좌담에 세 사람이 모였다. 왼쪽부터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책, 공동체를 꿈꾸다’ 연재의 필자인 출판평론가 장은수, 도서관운동가인 오혜자 대전 초롱이네도서관장.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독서공동체 운동의 현재를 점검하는 좌담에 세 사람이 모였다. 왼쪽부터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책, 공동체를 꿈꾸다’ 연재의 필자인 출판평론가 장은수, 도서관운동가인 오혜자 대전 초롱이네도서관장.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우선 ‘책, 공동체를 꿈꾸다’를 연재하며 접한 독서공동체의 현실과 소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장은수= “남들은 어떻게 책을 읽고 있을까. 독서공동체들을 취재해보니까 이걸 제일 궁금해하더군요. 오래 동안 함께 책을 읽어왔는데도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함께 읽기의 좋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 불안해해요. 사실 그런 건 없는데, 일종의 강박이죠. 취재하면서 다른 팀은 어떻게 하고 있다고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예컨대 그림책을 굳이 구연하지 말고 그냥 읽어주라는 원주 그림책연구회의 경험을 듣고는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데 놀라더군요. 40대에 함께읽기를 시작한 홍동마을 할머니 독서모임이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5년 역사의 상록독서회 같은 모임은 존경스럽죠. 멋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다들 감탄합니다.”

오혜자= “독서동아리들은 대부분 알려지거나 나서기를 싫어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좋아서 하는 활동을 누구한테 보여주고 잘한다는 소리 듣는 걸 쑥스러워 하죠.”

장은수= “실제로 섭외에 어려움이 있긴 합니다. 기관이 운영하거나 누구 한 사람이 끌고 가는 모임, 기업의 인사고과에 연관된 모임 같은 곳은 빼고 자발적인 모임,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모임을 소개하려니 찾기가 더 힘들기도 했고요.”

-정보화의 시대에 독서공동체는 어떤 의미입니까.

안찬수= “스마트폰이 모든 정보와 인간관계를 빨아들이는 요즘 세상에서 모여서 함께 읽는 사회적 독서는 자기만족이나 즐거움을 넘어 사회적 의미가 큽니다. 통계청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가구 수 2,000만 가운데 26.5%가 1인가구입니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가 매년 11월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라오는 단어를 분석한 결과 2015년 ‘외롭다’는 단어의 빈도는 4년 전인 2011년보다 5배가 증가했고요. 대면 접촉이 줄면서 고립감이 커지니까 다들 SNS에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지는 건 아닐까요.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동아리 활동은 그래서 더 가치가 있습니다.”

장은수= “책 모임은 1990년대가 절정이었죠. 2000년대 들어 쇠퇴했는데 2011년부터 조금씩 살아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독서의 귀환이라고 할까요.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수다로 끝나지 않는 모임을 원한다고 했어요. 내면에, 내 인생에 쌓이는 모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며 모임을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조정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게 됐다’는 것도 공통 반응입니다. 남편이나 아이와 관계가 좋아졌다,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소리 안 지르고 듣게 됐다고도 하고요. 민주주의는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건데, 독서동아리 덕분에 혼자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읽게 됐다, 생각의 벽이 무너지면서 사람들과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됐다는 거에요.”

안찬수= “스웨덴이 북구형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민간의 학습동아리가 바탕이 됐는데, 동아리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민주성’이에요. 회원 속에서 돌아가면서 리더가 나오고 발언의 무게도 회원 모두가 동등하게 운영하는 거죠. 자발성에 입각해서 함께 대화하고 논의하며 삶의 규칙을 만들어갑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위기론이 높은데 독서동아리는 풀뿌리 차원에서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제도나 법, 정책으로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으로서요.”

서울 노원구 상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엄마들의 모임인 상경다락방의 독서토론 일지. 상경다락방 제공
서울 노원구 상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엄마들의 모임인 상경다락방의 독서토론 일지. 상경다락방 제공
상록독서회는 1970년대 말 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공동체다. 처음 이름은 씨앗독서회였다. 손으로 쓰고 등사해서 1980년대 초에 발행한 회지 '씨앗'의 표지. 사진 제공 상록독서회
상록독서회는 1970년대 말 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공동체다. 처음 이름은 씨앗독서회였다. 손으로 쓰고 등사해서 1980년대 초에 발행한 회지 '씨앗'의 표지. 사진 제공 상록독서회

-독서공동체가 오래 지속되는 비결이 있습니까.

오혜자= “오래 가려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문제가 있으면 드러내서 함께 논의하고, 어떻게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았는지 과정을 기록하면서 민주적 운영을 배워가는 게 중요합니다.

장은수= “2006년 시작돼 130여 명이 거쳐간 보령의 책익는마을은 내부 갈등의 전투 기록이 있어요. 외부에 공개할 건 아니지만, 어떻게 부딪쳤고 갈라져나갔고 해결했는지 자세히 기록했죠. 기록에 철저하기는 부천 언니북이 최강인 것 같네요. 모임 날짜, 장소, 참석자, 토론 내용과 뒷풀이까지 빠짐없이 기록해 책으로 만들었어요. 많은 모임이 초기 기록이 별로 없는데, 족적을 남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자산이고 자부심이 됩니다.

안찬수= “12년 된 독서동아리 운영자에게 오래 지속한 비결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회원들의 경조사 같은 개인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걸 신경쓰다 보면 부담스러우니, 책 자체를 즐기고 선을 넘지 말자고 정했더니 즐겁게 오래 가더라는 거에요. 비단 경조사 문제가 아니더라도 적절한 관계 설정은 중요합니다.”

오혜자= “독서동아리 운영의 기준과 원칙을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있어요. 모임 하면서 차차 만들지 하면 잘 안 돼요. 불편해질까 봐 마음에 안 맞아도 그냥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 조금씩 불만이 쌓여서 안 좋죠. 내부 규칙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평가도 하고 새로운 계획도 짜면서 단합을 도모하는 게 좋습니다.”

장은수=“공부하려고 모이면 깨지기 쉬워요. 남들은 ‘총 균 쇠’니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데, 우린 너무 가벼운 책만 읽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는데 안 그래도 됩니다. 읽고 왜 좋았는지, 무엇이 나를 촉발했는지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오래 가는 모임은 대개 고백형 독서를 하더군요. 8명이 모이면 책을 여덟 번 읽은 것과 같아요. 스무 살부터 60살까지 세대를 넘어 같이 읽는 종적 독서가 중요해요. 20~30대 청년들은 모임을 통해 인생의 어른을 만났다고 하고 노년층은 젊은이들의 고민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게 진짜 공부죠. ”

안찬수=“독서동아리는 시민사회의 민주성을 키워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지자체가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독서동아리를 지원하는 서울 관악구나 노원구는 2015년 한 해에만 등록 모임이 200개 이상씩 늘어났어요. ”

오혜자=“지원은 관 주도형이 아니라 응원이라야 합니다. 독서동아리를 권장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듣고 지속 가능하도록 지지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연재 순서

1회. 남원 북클럽 "제주에서, 제주 책 읽으며… 앎과 삶이 하나 됐죠"

2회. 전주 북세통 "더불어 읽고 놀며 느끼며… 생각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었죠"

3회. 홍동 할머니 독서모임 불혹에 만나 칠순 훌쩍… 책 덕분에 평생 벗으로 살죠

4회. 부천 언니북 감상 내용·장소·뒤풀이자리까지 빼곡… 조선 선비 詩會 기록 보는 듯

5회. 청주 강강술래 업무용 독서에 지쳤을 때… '아무거나 함께 읽기'로 기쁨 찾았죠

6회. 보령 책익는마을 "9년 전 세 친구의 책 선물 나눔… 이젠 커다란 독서모임 됐죠"

7회. 김해 행복한 책읽기 공무원들 7년째 독서모임 "시민 목소리에 더 공감하게 됐어요

8회. 원주 그림책연구회 "패랭이꽃 버스에서 틔운 꿈, 그림책도시 향해 달려요"

9회. 시흥 상록독서회 군사독재 어둠을 깨며 함께 읽기 35년

10회. 서울 풀무질서점 책모임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디든지 달려가서 읽어요

11회. 서울 상경다락방 '나를 위한' 책읽기로 아이와 삶을 다시 발견하다

12회. 청주 북클럽 체홉 자본에 밀려 비어가는 도심... 독서의 향기로 채우죠

13회. 대전 백북스 교수와 제자들 강의실 모임, 학교 담장 넘어 세상을 품다

14회. 인천 얘기보따리 “엄마가 읽고, 모임서 읽고, 아이랑 함께… 세 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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