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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죽은 노무현’대 ‘산 박근혜’

입력
2014.07.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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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승승장구했던 박 대통령

상황 역전돼 노무현 존재감 커져

잦은 인사실패로 집토끼도 떠날 판

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이엔 악연이 많다.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참 나쁜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통령 노무현을 향해 쏘아붙인 말이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등장해 정치 전면에 나선 계기는 노무현 탄핵 역풍이었고,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추진한 4대 개혁법안을 완강히 반대해 보수세력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각종 재ㆍ보궐 선거에서 40대 0의 완승을 거둬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노무현에 대한 타협 없는 투쟁의 성과였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역전됐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면서 상대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존재감이 커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청와대는 잇단 인사 참극으로 책임론이 비등해지자 노 대통령 시절의 인사수석실을 부활시켰다. 세월호 참사 대책으로 나온 사회부총리와 인사혁신처 신설도 노무현 정부 때와 유사한 조직이다. 올해 초에는 노무현 정부를 대표하는 조직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부활한 데 이어 요즘은 국정홍보처를 다시 만들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나같이 한나라당이 비대하고 불필요한 대표적인 사례로 몰아붙였던 기구들이다.

박 대통령이 불만을 토로하는 지금의 인사청문회제도는 당 대표 시절 자신이 요구해 바꾼 것이다. 고위직 몇 명을 낙마시킨 뒤 참여정부의 힘을 빼기 위해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며 청문회법 개정을 제안해 관철시켰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해 한 집회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인사권 제약이라고 반대했다며 당시 노 대통령의 말을 옮겼다. “마 해줘라. 우리도 좀 불편하겠지만 혹시라도 저거들 정권 잡으면 난리 날기다. 사람 빌려달라고 할지도 모른데이.” 노 전 대통령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05년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박근혜 대표에게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중선거구제를 받아주면 총리와 내각을 넘기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박 대표는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보이지 않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필생의 과제인 지역주의 타파를 이루기 위한 시도였으나 한나라당은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속셈으로 폄하했다.

공교롭게도 이제 박 대통령이 연정을 주문 받는 처지가 됐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 박 대통령이 야당에 총리 추천을 의뢰하는 대연정을 제안하면 어떨까 생각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대연정은 고사하고 “더 찾을 인물이 없다”는 식으로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켰다. 박 대통령에게 권력 분점이란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대통령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예상과 달리 임기 초반에 지지층이 이반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점이다. 각각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이 산토끼는 그렇다 쳐도 집토끼까지 잃게 되는 상황을 맞는 것은 아이러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밀어붙여 대선 때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지역이 등을 돌리게 했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는 진보세력과 사이가 틀어진 결정타였다.

박 대통령도 보수층의 이반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잇단 인사 실패로 실망감이 커지면서 견고한 지지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과 50대에서도 잘못한다는 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원칙주의자들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두 대통령 간에 지지기반 붕괴의 현상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큰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외교와 민생 같은 국가의 핵심 정책 추진을 놓고 갈등을 빚었지만 박 대통령은 오로지 인사를 제대로 못해 점수를 깎아먹는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조차 고르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세력이 반발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진보좌파만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보수우파도 살고, 중도적인 사람들도 사는 나랍니다.” 아무리 봐도 노 전 대통령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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