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업계에 2015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세계 시장에서 연 매출 1억 달러를 넘는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생물의약품) 중 8개의 미국 특허가 한꺼번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저렴한 복제약을 만들어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다. 지난 3년 동안 특허 만료된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이 6개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이후 2020년까지 또 다른 바이오의약품 8개도 잇따라 특허 만료 예정이라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제약업계의 물 밑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학계와 업계의 연구개발 방향도 화학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바이오의약품 복제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매출액 100위 중 절반 장악 전망
바이오의약품은 사람을 비롯한 생물체에서 유래한 물질을 원료로 제조한 약이다. 쉬운 예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자체를 독성을 약화시켜 약으로 만든 백신이다. 혈액질환 환자나 수술 중 쓰는 혈액제제(혈액 성분으로 만든 약) 역시 바이오의약품이다. 이들은 1세대 바이오의약품으로 불린다. 이후 생명과학 발달로 원하는 대로 유전자를 조작하고 세포를 배양해 특정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성장호르몬과 인슐린제제, 항체의약품 같은 유전자재조합의약품, 인터페론제제 같은 세포배양의약품이 2세대 바이오의약품으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유전자나 세포 자체를 치료용으로 쓰는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 개발도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지난 2012년 약 1,570억달러로 전체 의약품 시장의 약 16.4%를 차지했다. 2016년에는 2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매출액 순위에선 더 큰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2018이면 매출액 기준 세계 상위 100대 의약품의 절반이 바이오의약품으로 너끈히 채워질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2000년 매출 상위 10대 품목 중 바이오의약품은 1개에 불과했으나, 2012년엔 7개로 확 늘었다.
바이오의약품이 이처럼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는 생물 유래 물질이라는 근본 특성 덕분이다. 고유의 독성이 낮고 작용 기전이 명확해 합성의약품으로 치료가 어려웠던 난치성, 만성 질환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임상시험 초기(1상) 단계의 성공 확률이 합성의약품보다 약 2.5배 높다는 점도 시장 성장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다.
닮았지만 같진 않은 ‘시밀러’
국내 제약사들이 생산하는 바이오의약품은 녹십자와 SK케미칼을 중심으로 백신이나 혈액제제 같은 1세대에 집중돼 있다. 동아제약과 메디포스트, 세원셀론텍, 파미셀, LG생명과학 등이 유전자재조합의약품이나 세포치료제를 내놓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1세대에 한참 못 미친다. 특히 항체의약품 시장은 다국적제약사들이 거의 장악했다. 항체는 몸 밖에서 침입한 물질(항원)을 방해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인체에서 생산되는 면역단백질. 항체의약품은 이를 인위적으로 주입했을 때 치료 효과는 극대화, 부작용은 최소화하도록 만든 약이다.
항체의약품은 전체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37%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국내 여러 제약사가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마침 2015년 미국 특허가 만료되는 바이오의약품 8개 중 5개(리툭산, 허셉틴, 란투스, 졸레어, 시나기스)가 바로 항체의약품이다. 2012년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램시마)를 출시한 셀트리온은 리툭산 바이오시밀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고, 동아쏘시오홀딩스(옛 동아제약)는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해 일본과 함께 벤처기업 DM바이오를 설립했다. 이 외에 녹십자와 LG생명과학, 한화케미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에서 대장암 치료제 얼비툭스, 류마티스질환 치료제 엔브렐 같은 항체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 임상시험도 한창이다.
흔히 제네릭이라고 불리는 합성의약품 복제약에 비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은 쉽지 않다. 제네릭은 정해진 화학반응을 거쳐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고, 약효나 부작용도 오리지널과 같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하니 제조 과정이 까다롭고, 약효나 부작용이 오리지널과 같을 수 없다. 때문에 보건당국의 허가 절차에서 제네릭은 임상시험이 생략되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신약에 버금가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개발 후에도 오리지널과 얼마나 동등하냐를 놓고 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 다국적제약사들의 다양한 특허 방언 전략도 국내 제약사들에겐 장벽이다. 실제로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완료한 셀트리온과 오리지널 허셉틴 제조사 로슈는 국내외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선도해야”
바이오의약품은 개발 과정이 어렵긴 하나, 한번 만들어놓으면 기술 진입 장벽이 높고 약값이 비싼 데다 투약 기간도 대체로 길어 효자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제약사들은 그래서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기형 셀트리온 이사는 “실제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하면서 체감하는 글로벌 시장의 관심은 대단하다”며 “아직 성공 사례는 적지만, 일단 개발하면 시장성이 매우 커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그러나 눈 앞의 시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최근 국제학계에선 체내 면역기능을 끌어올려주는 세포와 유전자를 치료제로 상용화하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면역세포나 이를 활성화시키는 유전자를 주입해 인체가 스스로 면역력을 높여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치료백신’이나 ‘항암면역’ 개념이다.
자체 개발한 자궁경부함 치료백신 임상시험을 제일병원과 함께 진행 중인 성영철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항체 위주로 발전해온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며 “관련 연구에 앞서 있는 국내 과학자들이 많은 만큼 (제약사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복제약 전략에서 벗어나 새 시장 개척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의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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