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아 스님 '숫따니빠따' 원전번역
'무소의 뿔처럼...' 등 가르침 담겨
“까까중, 거기 섰거라. 천박한 자 거기 섰거라.”
끗발 좀 세운다는 제관(祭官ㆍ브라만)이 젊은 부처에게 고함쳤다. 산중 절에 들어서는 출가자에게 웬 느닷없는 도발인가. 불교가 체계를 갖추지 않았던 시기. 깨달음을 이뤘다는 이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떠벌린다니 최고 계급 브라만에겐 눈엣가시였던 터.
그런데 멸시를 당한 부처의 응수가 통쾌하다. “그대는 천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성내고, 악의를 품고, 악하고 자비가 없는 사람, 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 사기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하오. (중략) 출생에 의해 천한 사람이나 브라만이 되는 것이 아니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만이 되는 것이오.”
숫따니빠따는 젊은 부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기 불교 경전이다. 팔리어 원전을 옮긴 ‘빠알리 원전 번역 숫따니빠따’(불광출판사)가 나왔다. 경의 모음이라는 의미의 숫따니빠따는 72개 경을 싣고 있다. 각 경은 부처가 숲에서 비구들과 나눈 문답을 담은 게송(揭頌ㆍ시 형태의 가르침)이나 산문으로 구성된다. 공지영씨의 소설 제목으로도 쓰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가르침도 이 중 하나다.
경전은 흔히 어렵게 여겨지지만 숫따니빠따는 쉬운 말로 절제 청정 자애를 논한다. 후대에 가미된 화려한 수사가 없는 덕이다. “쾌락을 절제하지 못하고, 맛에 대해 탐욕스럽고, 깨끗하지 못한 것과 어울리고, 허무론적 견해를 가지며, 그릇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니다.”(비린내의 경), “어머니가 자신의 외아들을 목숨 걸고 지키듯이, 모든 존재에 대하여 한량없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자애의 경)
2,500여년 전 인도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부처는 논객을 자처하는 당대 사상가들에게 “독단에 서서 자신을 측정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더욱 더 논쟁 속으로 들어가고, 독단을 버린 사람은 세상에서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일아 스님이 원전 번역을 했다. 6년간 수녀로 생활하다 종신 서원 전 출가한 승려다. 한국과 태국 미얀마에서 수행했고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주립대 종교학과와 웨스트대 대학원 비교종교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담마빠다’(법구경) 을 펴내는 등 팔리어 원전 경전 번역을 꾸준히 해왔다.
그간 숫따니빠따는 국내에 주로 일역이나 영역으로 소개됐다. 원전은 인연담과 합쳐져 다소 방대한 전재성 박사(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 번역본과 절판된 법정 스님 번역본이 전부였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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