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시도가 본격화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도 커져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정화 추진을 거듭 주장했다. 그제 열린 ‘2015년 개정교육과정 공청회’에서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됐다. 당정이 이미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 틀을 바꾸는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착오적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역사학계와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은 황우여 교육부장관에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전체 역사 관련학과 교수의 77%가 의견을 모았다. 학계에서 상징성이 큰 서울대 교수들이 정부 정책에 집단으로 반기를 든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전국의 초중고교 역사 교사 2,255명도 국정화와 교육과정 개악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부와 여당이 한국사 체제를 수정하는 데 대한 현장의 우려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울대 교수들과 역사 교사들이 낸 의견서와 선언문에는 국정화 재도입의 문제점이 조목조목 담겨있다. 먼저“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도 했다.“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실제 역사 교과서를 국정 형태로 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을 비롯해 정통성이 허약하고 억압적인 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근현대사 비중을 줄인다는 교육과정 개편안도 퇴행적이다. 동기는 단순하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해 온 논쟁을 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일이다. 중국은 근현대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일본은 자국 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근현대사를 별도 과목으로 신설하려고 한다.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우리 시각에서의 근현대사 교육을 도리어 강화해야 할 마당이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교육은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한국사 교과서는 후속세대의 역사 인식과 국가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수든, 진보든 정권의 역사관에 따라 매번 교과서가 휘둘리게 되면 교육현장은 물론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뿐이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시도는 중단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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