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1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후임 소장이 지명되지 않아 헌재가 9명의 재판관 중 1명이 모자란 8인 체제가 됐다. 헌재 재판관, 그것도 소장이 공백인 상태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헌재의 비상한 각오와 엄정한 심리가 더욱 절실해졌다.
박 소장도 퇴임사에서 비상 상황을 의식한 듯 “대통령 직무 정지 상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사태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9차 변론에서도 “이정미 수석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탄핵심판 결론을 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만일 그날까지 탄핵심판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7명의 재판관이 심리를 진행하게 된다. 탄핵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6명의 찬성이 필요해 심판 결과가 왜곡될 소지가 크다. 탄핵심판의 신속성뿐 아니라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그때까지는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는 데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 앞에 놓인 장애물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재판관 평의와 결정문 작성 등의 소요기간을 감안하면 변론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 종결돼야 한다. 헌재는 9일까지 증인 변론을 잡아 놨지만 박근혜 대통령 측은 추가로 증인 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증인 신청을 받아들이면 그만큼 변론 기일도 길어진다. 헌재가 신청을 기각하면 대통령 대리인단은 방어권 보장 불충분 등을 이유로 변호인단 총사퇴 카드를 꺼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렇게 되면 변론은 상당 기간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재판의 공정성 차원을 벗어나 탄핵심판을 고의로 훼방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헌재는 이런 심리 지연 전략에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박 대통령 측도 탄핵심판에 적극 협조해야 마땅하다. 박 대통령이 설 연휴 직전 보수 성향의 인터넷 방송과 기습 인터뷰를 자청한 것은 헌재에 대한 불만 표출과 지지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 그 인터뷰 직후 60대의 ‘박사모’회원이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박 대통령 측의 무리한 버티기가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의 수장이자 탄핵심판을 초래한 당사자인 대통령이 사법기관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헌재에 출석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품격을 잃지 않기를 많은 국민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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