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업계의 '열정페이' 관행이 논란이 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청년 노동 착취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패션업계 만큼이나 청춘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곳은 미용업계. 두 업계는 닮은 점이 많다. 도제식 직업훈련 시스템 아래 '배움'이라는 명목으로 청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미용업계에 뛰어들었던 청춘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현재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용업계 종사자 5명을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 하루 10시간 주 6일 근무… 월급은 70만원
일반적으로 헤어 디자이너가 되려면 헤어숍에 입사해 스태프(1~2년)과 인턴(2~3년) 등 약 5년의 수련 과정을 거친다. 스태프가 보조라면, 인턴은 견습생. 스태프는 바닥을 쓸고 샴푸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인턴으로 '진급'할 수 있다. 인턴은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손질하는 법을 배우고, 각종 실무를 하게 된다. 이들은 대개 하루 10시간, 주 6일씩 일하며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월급은 적지만 근무 강도는 높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유명 뷰티숍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유하나(24·가명)씨. 연예인들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야 하니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다. 유씨의 월급은 한 달 70만원. 시급은 2,800원(평균 주6일, 하루 10시간 근무)에 불과하다. 턱없이 적은 월급은 지난해 최저시급인 5,210원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유씨는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그마저도 교육을 받다 보니 돈 쓸 일이 없더라"면서 "월급이 적어도 돈을 쓸 일이 없으니 불편함이 없었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 파마독에 하지정맥류까지 '종합병원'
근무량이 많다보니 건강엔 적신호가 켜진다. 4개월 차 '신입 스태프' 김가연(21·가명)씨의 손에는 늘 진물이 흐른다. 김씨가 미용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 즉 샴푸작업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하루에 적게는 30번, 많을 땐 50번 정도 샴푸를 한다."면서 "샴푸독이 올라 피부에 진물이 생기고 손가락 부분이 빨갛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료 10명 중 3~4명은 파마독으로 고생을 한다"면서 "어차피 물에 손을 담그고 샴푸와 파마약을 만져야 하니 피부과에 가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스태프나 인턴들의 식사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 량준혁(24)씨의 스태프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평균 식사시간은 7분. 식사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주로 손님을 응대하던 중 짬이 날 때 해결한다. 주메뉴는 고열량 초코바나 떡볶이와 같은 분식류다. 량씨는 "파마 시술 도중 짬이 나면 7분 안에 밥을 해결하고 다시 일을 하다 보니 장염을 앓곤 했다"면서 "동료들 중 만성장염을 앓거나 하지정맥류로 다리 저림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 손님은 왕… 언제나 웃으며 '스탠바이'
적은 월급과 고된 노동보다 더 힘든 건 손님을 맞는 일이다. 미용은 기술직임에도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서비스 직종이다.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언제나 웃으면서, 밝은 목소리로 고객을 맞아야 한다.
이은선(24·가명)씨가 일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에는 손님을 대하는 '매뉴얼'도 있다. 항상 웃는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고객을 맞이하고, 고객이 심심해 하지 않도록 말동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씨는 "인턴은 언제든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스탠바이(준비)' 자세로 있어야 한다"면서 "손님을 응대하는 자세도 디자이너 승급시험에 점수로 반영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손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도 일단 고개를 숙여야 한다. 미용실의 이미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량씨도 억울한 일을 겪었다. 그는 "만취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다가 이유도 모르고 손님에게 뺨을 맞았다"면서 "미용실 측에선 일이 크게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잘못한 게 없어도 사과했다"고 말했다.
● 근무강도는 정규직… 현실은 '교육생'
이들이 스태프와 인턴 과정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스태프와 인턴과정을 거치며 교육을 받고, 직접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실습의 기회도 얻는다. 그러나 기회는 역설적으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묵인하게 만든다.
미용업체들도 스텝과 인턴들이 '질 좋은 교육'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유명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경우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단계별 테스트를 거치면 ‘디플로마'라는 자격증을 주고, 해당 브랜드 취업 시 혜택을 주는 식이다. 브랜드에 따라 교육비를 지원하는 곳도, 하지 않는 곳도 있다.
한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일하는 3년차 인턴 김준영(24·가명)씨는 "미용자격증의 5과목을 공부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은 커트 뿐"이라면서 "결국 최근 유행하는 기술들을 연마하려면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업체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열정에 상응할 '산업 시스템' 갖춰야
문제는 '열정'의 반대급부인 '교육'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전근대적인 도제식 교육 시스템은 스태프와 인턴이라는 이름의 견습생들이 만족할 만한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유하나(24·가명)씨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했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유씨는 "승급시험 3일 전에야 기술을 교육 받았다"면서 "손으로 연마하는 기술인데, 3일 전에 받은 교육으로 시험을 통과할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용업계에 공통으로 인증된 교육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미용업계에는 스태프와 인턴은 교육생이어서 노동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면서 "교육생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업계의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도제식 교육 시스템은 훈련 체계나 양성 시스템도 허술하고 이를 평가하는 방식도 사업장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정해진다"면서 "현재의 산발적인 교육 훈련 체계가 아닌 산업 내에서 공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평가가 바탕이 된 교육훈련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숙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
조윤경 인턴기자 (국민대 중국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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