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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운산장

입력
2017.04.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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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북한산 백운산장에서 몇 번 잠을 잔 적이 있다. 우이동 입구의 등산학교에서 토요일 오후 강의를 들은 뒤 무거운 배낭을 진 채 어두운 산길을 걸어 올랐다. 근처 계곡물로 대강 땀을 씻은 뒤 산장 마룻바닥에 일렬로 누우면 누군가의 호흡 소리와 뒤척임 때문에 몸은 피곤해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세워도 다음날 새벽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깨끗한 경치를 보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 아래 해발 650m에 위치한 백운산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장이다.

▦ 일제 때인 1924년 이해문씨가 움막을 만든 게 그 시작이라니 역사가 93년이나 된다. 1960년 산장을 새로 지을 때는 등반대회에 참가한 고교생들이 시멘트 포대 등을 지고 올라왔다고 한다. 1992년 불이 나 새로 지을 때도 산악인들이 힘을 보탰다. 백운산장(白雲山莊)이라는 한자 현판은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이 썼다. 그는 양정중학교 산악부 출신으로 북한산을 즐겨 찾았다. 초입에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됐다는 소식에 산장에서 자결한 국군장병 두 명을 위로하는 ‘백운의 혼’ 추모비가 있다.

▦ 현재 백운산장을 관리하는 이는 이해문씨의 손자인 이영구(86)씨다. 그는 1946년 열다섯 나이에 산장으로 들어와 70년을 살았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다섯 남매를 키웠다. 사고가 나면 수습에 나서고 부상자도 돌보았는데 그런 그를 산악인들은 인간문화재로 여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요즘 걱정이 많다. 불 탄 산장을 새로 지을 때 기부채납 조건을 달았는데 그 시한이 다음달 23일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백운산장이 국립공원 안에 있는 데다 토지가 산림청 소유인 만큼 넘겨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 그러나 할아버지와 산악인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산악인들이 추억을 쌓고 산악문화를 꽃피운 산장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것을 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인수산장, 우이산장, 북한산장, 보문산장 등 북한산과 도봉산의 산장이 대부분 철거되거나 방치돼 있다. 설악산의 비선대 산장도 사라졌다. 그런 만큼 공단이 백운산장을 인수하면 건물을 철거하거나 산악인이 편히 이용할 수 없게 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공단의 원칙과 사정도 중요하지만 산장을 보전하라는 할아버지와 산악인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게 아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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