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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십상시

입력
2014.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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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十常侍)는 열 명의 환관이란 뜻이다. 후한(後漢) 영제(靈帝ㆍ재위 168~189) 때 중상시(中常侍)였던 장양(張讓), 조충(趙忠), 곽승(郭勝), 손장(孫璋) 등 12명의 환관들을 뜻하는데, 그 중 열 명이 서로 붕비(朋比ㆍ사적 조직)를 맺어서 세칭 십상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는 이들이 제후로도 봉해지고 부형과 자제들이 여러 주군에 포진해서 백성들을 침학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후한(後漢)이 무너지면서 위·촉·오 삼국이 경쟁하는 삼국시대로 끌려들어가게 된 배경을 영제의 무능과 십상시의 전횡으로 꼽고 있다. ‘삼국지연의-도원결의(桃園結義)’편에 따르면 영제는 환관 장양을 부를 때 ‘아버지 다음 가는 어른’이란 뜻의 ‘아부(阿父)’라고 불렀다고 묘사하고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황제가 환관을 아부라고 부를 때 이미 후한은 끝장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부’는 단순한 소설적 표현만이 아니다. 십상시가 궁중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화를 입은 두 사람이 황보숭(皇甫崇)과 낭중(?中) 장균(張鈞)이다. 후한의 정사인 ‘후한서-황보숭 열전’에는 영제가 “장 상시(장양)는 나의 아버지이고, 조 상시(조충)는 나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도 전한다. 황보숭은 황건적의 우두머리인 장각(張角)의 동생인 장량(張梁)과 장보(張寶)의 목을 베는 큰 공을 세웠음에도 장량의 뇌물 요구를 거절했다가 장량과 조충의 모함을 받아 좌거기장군(左車騎將軍)의 벼슬을 삭탈당해야 했다. ‘후한서-환자(宦者) 열전’의 ‘장양, 조충’조에 따르면 낭중 장균은 ‘장각이 군사를 일으키자 만인(萬人)이 즐겁게 가담한 것은 그 원인이 모두 십상시에 있다’고 성토하면서 십상시에게 원통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고소할 곳을 찾지 못해서 모여서 도적이 된다고 말했다. 장균은 “십상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남쪽 교외에 내걸어서 백성들에게 사죄하소서”라고 진언했다. 그러면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큰 도적들은 스스로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영제는 장균에게 크게 화를 내면서 “이는 진실로 미친 자이다. 십상시는 진실로 한 사람도 착한 자가 없다는 말이냐?”라고 꾸짖었고, 결국 장균은 옥중에서 죽고 말았다.

십상시의 전횡은 사실 영제 앞의 임금인 환제(桓帝ㆍ재위 146~168)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당고(黨錮)의 화(禍)’이다. 환제 연희(延熹) 9년(166) 사대부 세력들이 십상시를 제거하려다가 거꾸로 그 계략에 걸려 수백 여 명이 사형당하거나 유배, 구금되었던 사건을 뜻하는데, 이때 화를 입은 인물들을 ‘당고의 제현(諸賢)’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사대부 세력이 궁중의 환관 세력들과 싸우다가 패배할 경우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곽태(郭泰)라는 인물이 이때 변을 당한 사대부들을 애도하면서 , ‘시경(詩經)-대아(大雅)’편의 “현인이 망했으니 나라가 병들었구나〔人之云亡 邦國殄?〕”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나라도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탄식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화를 당한 인물 중에 가표(賈彪)도 있다. ‘후한서 가표 열전’ 등에 따르면 가표는 신식(新息)의 수령이 되었을 때 가난한 백성들이 자식을 내버리자 앞으로 영아를 유기하면 살인죄로 다스리겠다고 선포했고, 이후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후 가표를 가부(賈父)라고 부르면서 아들이면 가자(賈子), 딸이면 가녀(賈女)라고 불렀는데, 가표 덕분에 산 아이들이란 뜻이었다. 가표는 당고의 화가 발생하자 환제에게 극력 변호해서 이응(李膺) 등을 석방시키기도 했지만 환제의 당질(堂姪)인 영제는 이런 상황 판단도 할 수 없는 용군(庸君)이어서 영제 때 가표는 금고를 당해 집에서 죽고 말았다. 당고의 화 때 무사했던 황보규(皇甫規)는 이를 수치로 여기고 스스로 상소해서 자기도 그 당인(黨人)이니 함께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조정에서 불문에 부쳤다는 이야기가 ‘후한서-황보규 열전’에 나온다. 처벌 받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할 정도의 시대가 되었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어지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십상시는 원소(袁紹)와 그 동생 원술(袁術) 등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동탁(董卓)이 황제 보호를 명분으로 수도에 난입하면서 후한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청와대 문건과 관련해 나오는 ‘십상시’란 말을 언론에서 붙인 용어인줄 알았다가 청와대 내부 문건에 나온 말이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건을 작성한 청와대 파견 경정과 그 상관이 문건 작성 직후 인사 조치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궁중 암투 성격까지 느끼게 한다. 청와대가 이런 구시대적인 행태로 정력을 소모하기에는 대한민국에 산적한 현안들이 너무도 많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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