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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등록 : 2017.05.09 14:28
수정 : 2017.05.09 14:28

[이종필의 제5원소] 아쿠아 알레 푸니

등록 : 2017.05.09 14:28
수정 : 2017.05.09 14:28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약 3,2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이 오벨리스크가 성 베드로 광장에 세워진 것은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 때의 일이다.

작업의 책임자는 폰타나였다. 높이 25m, 무게 350t의 오벨리스크를 옮겨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천 명에 가까운 일꾼과 100필이 넘는 말이 동원되었고 작업은 4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었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질 장소에는 작업용 비계가 설치되어 수많은 밧줄과 도르래로 오벨리스크를 들어 올릴 계획이었다. 작업 자체가 까다롭고 어려웠던 탓에 교황은 구경꾼들에게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말도록 명령했다. 감독관의 작업지시가 일꾼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엄포도 놓았다.

작업은 로마의 뜨거운 태양 아래 진행되었다. 일꾼들이 밧줄을 당기면 그 밧줄은 도르래를 통해 오벨리스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지정된 위치에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극심한 마찰력과 로마의 뙤약볕을 밧줄이 이기지 못한 것이다. 작업은 순간 중지되었다. 똑바로 올라서던 오벨리스크도 멈춰 섰다. 일꾼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폰타나는 절망감에 빠졌다.

이때였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크게 외쳤다. “아쿠아 알레 푸니(Acqua alle funi)!” 밧줄에 물을 뿌려라! 그 순간 가장 필요한 한마디였다. 그는 베네데토 브레스카라는 선장이었다. 브레스카는 사형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해결책을 제시했다. 덕분에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오벨리스크는 예정된 장소에 무사히 우뚝 설 수 있었다. 브레스카는 사형되기는커녕 교황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 브레스카와 그 후손들은 대대로 예수 성지주일 기념행사에 종려나무 잎을 납품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 특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경험 있는 전문가의 통찰과 식견은 이만큼 중요하다. 2014년 4월의 한국에서도 누군가 ‘아쿠아 알레 푸니’를 외쳤더라면 수백 명의 목숨을 차가운 바다 속에서 그리 허망하게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인 헌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비선실세를 통해 국정을 농단했던 실상을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에서는 ‘아쿠아 알레 푸니’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히려 권력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떠 안겼다. 식스토 5세가 박근혜 식으로 통치했다면 브레스카는 화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오벨리스크는 성 베드로 광장에 내동댕이쳐져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된 이번 대선이 이제 끝났다. 사상 초유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고 세우는 정부인만큼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무척이나 많다. 벌써부터 ‘새 대통령에 바란다’ 시리즈가 아마도 온갖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도 그 시리즈에 오십 첩 반상을 추가로 주문할 생각은 없다. 그저 숟가락 하나만 얹어서 말하자면, ‘아쿠아 알레 푸니’를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최순실이라는 희대의 비선실세를 겪은 마당에 새 정부가 그 교훈을 모를 리야 있을까마는, 현실의 정치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물론 나는 새 대통령이 박근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인(人)의 장막에 가로막혀 ‘아쿠아 알레 푸니’를 듣지 못하는 경우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모 후보 캠프에 줄을 선 교수가 수천 명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광장의 여기저기서 온갖 고함소리들이 터져 나올 터인데 그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아쿠아 알레 푸니’인지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권력에 가까운 목소리에 이끌리기 십상이다. 국민들과 가장 소통을 잘했다는 노무현 정부에서조차 황우석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보완책이 있다.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일수록 의식적으로 변방의 풀뿌리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최선을 택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자가 아무리 들을 준비가 돼 있더라도, 전문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모두 헛일이다.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버린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에는 특히나 과학기술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한때는 이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주어진 연구나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면서 이번 대선을 치렀기 때문에 적어도 새 정부에서는 ‘아쿠아 알레 푸니’를 외치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블랙리스트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지난 겨울 우리가 들었던 촛불이 헛되지는 않은 셈이다. 세상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한 뼘이라도 좋아지고 있다. 이 말은 앞으로도 사실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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