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 연거푸 치명타 우려
사태 장기화 땐 가계 소비 뚝
기업 생산·투자 감소 악순환 전망
사스 악몽 중국, 전염병에 민감
한국 여행 줄줄이 취소 가능성
11일 금리 결정에도 영향 줄 수도
경기가 꺾이고 믿었던 수출마저 부진의 늪이 깊어지는 와중에 한국 경제가 또 하나의 대형 악재를 만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 확산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다.
1일 메르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확인되고 3차 감염까지 확인되면서 메르스에 대한 심리적 공포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제나 행사를 잇달아 취소했고, 상당수 국민들은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한 채 메르스 확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내수 부진이 회복되기도 전에 또다시 소비를 위축시킬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소비심리 위축ㆍ중화권 수요 이탈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질병이 발생하면 소비자는 관광지나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기 마련”이라며 “사태가 길어지는 경우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메르스로 인한 사회 불안이 장기화하면 소비심리 위축→가계 소비 감소→기업 생산ㆍ투자 감소→고용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메르스의 장기화는 부진한 국내 소비에 그나마 상당한 버팀목이 되어 준 중화권 수요의 감소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홍콩, 대만 관광객은 2002~2003년 그 지역에서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의 기억 때문에 전염병에 매우 민감하다. 이들이 국내 여행을 취소하거나 국내에서 소비를 줄이는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는 것도 이런 영향이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관광객 소비가 10% 줄면 국내 수요 1조 5,000억원이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거의 유일한 메르스 발병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잃어버린 중화권 수요는 일본으로 흡수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별로는 단기적으로 관광업, 식음료업, 유통업, 교통 관련 분야 등이 직접적 피해를 받을 것으로 보이고, 길어지면 내수 관련 업종의 전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날 메르스 확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1% 넘게 하락하는 등 주식시장에도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메르스가 이번 주까지 진정되지 않고 확산 쪽으로 가는 것이 명백해지면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내려야 할 요인(실물경기 위축, 엔저)과 내리지 말아야 할 이유(미국 금리인상, 가계부채)가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메르스라는 외부 변수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2003년 사스 경제적 피해 55조원
메르스 장기화가 한국경제에 미칠 피해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과거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인근 국가가 직접 경험한 경제적 피해를 보면 그 심각성을 대략으로나마 짐작할 수는 있다.
200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전염병 중에서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을 끼친 것은 2002~2003년 중국과 홍콩 등에서 창궐한 사스다. 당시 중화권 국가들은 소비심리 위축과 이동 제한 탓에 식음료ㆍ교통ㆍ숙박 부문 등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 결국 2003년 2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전분기보다 2.9%포인트 급감했고, 홍콩은 2003년 1ㆍ2분기 동안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사스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집계 기관마다 다르지만, 최대 500억달러(약 5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동물 전염병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 발생한 구제역과 광우병은 각각 300억달러(약 33조원)와 130억달러(약 14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에볼라는 사망자가 많았지만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경제적 피해는 이보다 적은 편이었다.
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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