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자신에게 후견인을 둬야 하는지를 심리하는 판사 앞에서 정신이 멀쩡하다고 강조했다. 롯데가(家) 장ㆍ차남의 경영권 분쟁의 변수 중 하나로 치매설 등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상태에 재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자신의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오후 3시 45분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에서 내린 그는 휠체어에 몸을 싣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럽게 한발씩 발걸음을 떼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법정으로 향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가 1시간 가량 진행한 이날 첫 성년후견 개시 심판 심리에서 신 총괄회장은 자신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신 총괄회장 측 김수창 변호사는 심리 후 “신 총괄회장은 ‘50대 때와 지금의 판단 능력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본인의 판단 능력에 대해 아주 길게 말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고령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신 총괄회장이 직접 법정에 나온 데 대해 “재판부의 출장 검증을 추진할까 했지만 본인이 직접 나와 답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명명백백히 본인의 (건재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라 스스로 결정해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총괄회장은 법원에 나오기 앞서 사석에서 후견인 지정을 청구한 넷째 여동생 신정숙(78)씨에 대해 “걔 정신이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반면 정숙씨의 이현곤 변호사는 “신 총괄회장에게 치매 증상이 온 것으로 보였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신 총괄회장은 ‘50대 때나 다름없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고, 본인이 어떤 이유로 법정에 나왔는지, 나온 곳이 법정인지도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 정숙씨는 후견인 후보로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자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을 지목했다.
법원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에 대해 정신감정을 실시하는 것에는 양측이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차남 신동빈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쪽에 힘이 실리며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지난해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하고 롯데그룹 경영권을 장악한 신 회장은 당시 부친의 인지ㆍ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고, 신 총괄회장 측은 일본 법원에 대표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밀려난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자필 서명한 신동빈 회장 해임 지시서를 공개하는 등 부친의 뜻이 자신에게 실려 있음을 줄곧 주장해왔다. 반대로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사무처리가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되면, 이를 이유로 경영권을 잡은 신 회장의 위치는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 결정에는 적어도 5~6개월이 걸릴 예정이다. 그 사이 서울가정법원이 지정한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는 등 절차를 밟게 된다. 정신감정 방법이나 시기, 기관은 다음달 9일 심문기일에서 결정된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성년후견제도란
성인이라도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재산관리 등에 대한 대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 2013년 7월 도입됐다. 금치산ㆍ한정치산 제도와 달리 당사자의 잔존능력을 존중하며 후견인에 대한 감독도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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