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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데이트 폭력

입력
2017.03.0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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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가두고 때리는 데이트 폭력이 심각하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연인에게 폭력을 당한 사람은 4만 여명. 이 중 600명이 목숨을 잃거나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연인 간 성폭행은 2배로 늘었다. 친밀한 사이의 폭력이라 경찰 개입이 쉽지 않다. 적절한 치료나 사회적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드러내기를 꺼려 신고율은 10% 미만.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참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폭력이 반복적이고 강도가 세지는 까닭이다. 가해자 77%가 전과가 있어 재범 우려도 높다.

▦ 서양에서 데이트라는 자유연애 방식이 등장한 건 고작 100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청춘 남녀가 대개 여성의 집에서 만났다. 여성이 연이 닿은 남성을 초대해 외모와 교양 정도를 살폈다. 부모 감시 아래 엄한 에티켓을 따랐으니, 만남의 주도권은 여성과 그 부모에게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데이트라는 새로운 문화양식이 등장했다.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도시화로 하층민의 주거환경이 열악해진 게 배경이다. 청춘 남녀가 비좁은 집을 벗어나 공원과 레스토랑, 극장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 역사학자 베스 베일리는 ‘데이트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돈이 연예관계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남성 중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데이트 비용은 남성 몫이었다. 만남의 주도권은 자연스레 남성에게 넘어갔다. 남성은 돈으로 권력을 사고, 여성은 성적 호의를 제공하며 경제적 실리를 취했다. 여성해방운동을 거치며 전통적 성 영역이 많이 무너졌지만 각각의 매력을 사고파는 데이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돈이 연애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시스템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본능이지만, 그 현실은 자본주의적 교환이다.

▦ 경찰청은 112시스템에 ‘데이트 폭력’ 코드를 넣기로 했다. 수사전담반이 출동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의원은 교제 상대방의 폭력 전과를 경찰에 문의할 수 있는 이른바 ‘클레어법’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오늘은 유엔이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한 ‘세계 여성의 날’. 데이트 폭력은 애정 다툼이나 사랑 싸움이 아니다. 범죄이자 착취적 남녀관계의 반영일 뿐이다. 세계 꼴찌 수준인 양성 불평등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당장은 엄격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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