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이한 직전 발언 계산 깔린 듯
주한미군사령관 北위협 강연선 과도한 논란 경계, 아예 언급 안해
정부 온갖 논리 동원 방어에 나서… "협의나 논의 없었다" 입장 되풀이
내달 한미일 국방장관회담 예정, 거론 여부따라 공론화 갈림길될 듯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당사자인 케리 장관은 홀연히 한국을 떠났지만 그의 발언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계속되면서 우리 정부가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케리 장관은 18일 용산미군기지를 찾아 “북한의 모든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는 사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가 출국 전 마지막 일정에서 돌연 사드 문제를 꺼낸 것이다.
짧은 발언이었지만 우리 외교안보라인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케리 장관은 한미 양국간 ‘금기’로 통하는 사드 문제를 직접 거론한 미 정부의 최고위직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방한해 “전 세계 누구와도 사드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는데 미 측에서 불과 한달 만에 다시 사드 배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우리 정부는 곤혹스럽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온갖 논리를 동원해 방어에 나섰다. 외교부는 “케리 장관의 ‘우리(We)’라는 표현은 한미 양국이 아니라 미군들을 지칭한다”고 해명했고, 국방부는 “사드 관련 미 측의 요청도, 우리 측과 협의나 논의도 없었다”며 기존 ‘3NO’ 방침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을 곧이 믿기는 어려운 정황이 한 둘이 아니다. 케리 장관은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노회한 정치인이고 그의 발언이 공교롭게도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나온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우리 측과의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되 사드 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켜 한국 내부 입장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리되는지 지켜보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케리의 발언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기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국 측은 과도한 논란을 경계하듯 즉시 ‘치고 빠지기’는 전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19일 조찬강연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을 강조했을 뿐 사드 얘기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이 지난해 6월 사드 배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해 논란에 불을 지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첫 공개강연에서 한층 진전된 입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밋밋하게 마무리됐다.
미국 측의 속도 조절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사드 논란은 진정될 기미가 없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드를 놓고 ‘3NO’를 말하는 상황은 한미동맹의 정상적 모습이 아니다”면서 “북한에 대응해 최적의 미사일 방어를 구축하는 것이 내달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이 더 이상 중국의 반대나 여론의 비판을 의식하지 말고 조속히 사드 배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라는 강력한 요구다. 반면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답변이 군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드 논란은 이달 29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한미일 3국과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회담이 예정돼 있는데, 미 측에서 또 다시 사드 문제를 거론할 경우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사실상 공론화 수순을 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제에서 사드가 제외된다면 이번 논란은 당분간 소강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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