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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보수로 미화된 ‘보수’

입력
2017.02.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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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권위주의하에서 갈등은 억압과 폭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배제된다.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균열을 조정하고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다. 또한 갈등은 희소한 자원의 배분 과정에서 발생한다. 재화와 명예와 권력이 무한대라면 갈등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에 입각한 권위가 가치의 배분에 개입한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는 선악의 가치판단보다는 가치중립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현상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대결지향적이다. 기득권 대 비기득권, 수구 대 개혁의 양분법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방 이후의 좌우익의 대립, 분단으로 인한 냉전사고의 망령,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안보이데올로기 등과 성장제일주의 정책이 가져온 어두운 시대의 음영 등에 기인한다. 이러한 퇴행적 요소들은 지금도 어김없이 한국정치의 외적 상황변수로 기능하고 있다.

탄핵 정국도 예외가 아니다.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친박 단체와 추종자들을 가치중립적인 갈등의 당사자로 보기에는 그들의 지향이 맹목적이며 폭력적이다. 탄핵기각을 지지할 수 있고, 각종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용인하기 어려운, 상식을 넘어서는 극언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억압하려는 의도가 개재된다면 이는 정상적인 수준의 갈등 당사자로 볼 수 없다.

촛불집회에 맞서는 ‘태극기’ 집회의 비상식적 구호와 극단적 언어는 대선 이후의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촛불’과 ‘태극기’를 동일한 무게의 갈등으로 보는 이분법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기계적 중립에 매몰된 관점이다. 왜곡된 ‘보수’는 진영논리로 본질을 흐리고, 대통령 측의 헌정과 법치를 부정하는 극단적 발언들은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진영내부의 통합을 강화하고자 시도한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의 본질은 외면한 채, 다른 쟁점 축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략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는 노골적 꼼수, 재판정에서의 기이하고 해괴한 법치 부정 등은 탄핵 심판 불복의 명분을 쌓기 위한 수순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복지와 노동은 물론 외교와 안보, 교육 부문 등에서 생각이 다른 집단을 좌파·종북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치졸한 시도가 이른바 ‘보수’단체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국가와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시대착오적 미망의 소치다. 갈등을 생산하여 이를 자양분 삼아 탄핵의 본질을 진영논리의 프레임에 가두고자 하는 반역사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극단적 편향을 동원한 갈등의 극대화를 통하여 억압과 배제의 유신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격이다.

탄핵소추안 인용 후 촛불로 비유되고 상징화되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 기대의 지향은 어디로 향할까. ‘촛불 민심’에 맞섰던 극우 친박의 구호는 어떻게 변할까. 태극기를 빙자한 몰역사적 수구세력의 반동적 행태, 반지성적 퇴행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수구적 ‘보수’의 조직적 저항과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적대(敵對)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다. 적대적 모델은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해결할 수 없는 ‘적대적(antagonistic) 갈등’에서 상대를 적이 아닌 반대자로 간주하는 ‘경합적(agonistic) 갈등’의 모델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탄핵 반대 세력의 비이성적이고 퇴행적 행태들을 경합의 틀로 끌어들이는 노력은 대선 과정에서의 의미 있는 연합정치와 대선 이후의 거버넌스(연대와 협치)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대’에서 ‘경합’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탄핵 심판의 최종변론도 끝났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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