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의 막말 논란을 보는 며칠 간, ‘60년생 김지영’씨의 삶을 생각했다. 이 의원이 ‘동네 아줌마’의 정체성과 일자리를 과연 어떻게 보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주목 받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60년생 버전으로 만든다면, 그 노동의 가치와 속성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인 60년생 김지영씨의 이야기는 달걀 프라이 에피소드로 시작될 지 모른다. 변변찮은 형편, 어머니가 육남매 도시락과 아침 상에 올릴 수 있는 달걀은 2개뿐이다. 하나는 아버지, 하나는 장남 몫인 것엔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오빠 도시락에만 달걀이 깔린다는 걸 뒤늦게 안 막내 딸이 “난 효도 안 해, 아들 효도만 받아”를 외치기도 했지만, 지영씨는 달걀뿐 아니라 한 명 몫이 겨우 마련된 대학등록금이 장남 것인 상황도 당연히 여겼다. 모든 집이 으레 그랬다.
그래도 고교 졸업 후 경리, 보험판매원으로 성실히 일했고,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는 대부분 그랬듯 자의 반 타의 반 전업주부가 됐다. 하지만 국가경제도 기업도 성장한다는데, 남편의 월급은 이상하게 20년째 제자리걸음이었다. IMF 사태 이후론 되레 외벌이 가장의 실직, 바닥난 잔고, 가계부채 증가 등을 차례로 겪었다. 아이가 엄마 손을 덜 타는 10대가 된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다시 뛰어든 취업 전선에서 택할 수 있는 일터는 병원, 마트, 학교 급식실이었다. 임금, 처우, 환경이 다 열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섭씨 40도가 넘는 학교 주방에서 장화, 앞치마, 장갑으로 무장하고 20㎏이 넘는 쌀과 식기를 나르며 1인당 200명 분의 식사를 차려냈다. 그리 8년, 10년을 일해 몸이 성할 날이 없어도 그만둘 생각은 못했다. 아이의 취업 소식은 아직인데 생활비도, 노후대책도 부족했고, 사회 복지도 변변찮아 보였다. 게다가 거리에는 처지가 비슷한 중고령 여성들이 이 ‘벼랑 끝 일자리’나마 찾고자 줄을 서 있었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우리 사회의 고강도 노동, 저임금 일자리를 도맡은 중고령 여성의 정체성은 대략 이렇다. 학력, 경제력, 실직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은 다르겠지만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학교 급식종사자, 청소원,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음식점 서비스직 등 각종 사회복지ㆍ서비스 노동 수요를 채워낸 것이 이들이다. 없어선 안될 필수 직군이지만, 취업 시장의 ‘을 중의 을’인 중고령 여성이 몰린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와 헐값 고용이 이어졌고 그러니 더욱 청년과 남성이 외면했다. 결코 ‘동네 아줌마들이 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서가 아니다.
대기업이 급여 인상과 투자에 뒷짐지고, 정부가 이를 방관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이들 노동자가 기신기신 이끌었다. 한 일간지에 보도된 세계은행 연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국내에선 생산성 향상과 기업 신규투자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이뤄진 2%대 성장은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린 50~60대, 특히 간병인, 요양보호사, 공공서비스 분야에 채용된 여성 취업자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 수백만 중고령 여성이 밥짓기, 쓸고 닦기, 돌보기를 거부하고 궐기를 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즉 병원과 기업과 학교와 맞벌이 가정은 속절없이 멈춰서야 한다. 그런 주제에 한국 사회, 심지어 공공기관이 이들을 괄시하고 임금을 후려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되는 법과 제도 때문이다. 즉 정부와 의회, 법원, 언론 탓이다. 이 노동에 감사하고 죄스러워한다면, 당장 해야 할 것은 막말이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 임금과 고용지위 향상을 위한 입법 연구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려는 노력이다.
적잖은 이들이 숙련도, 부가가치, 생산성을 언급하며 이들을 괄시하지만 밥을 짓고 사람을 돌보는 일은 그리 쉽게 평가절하해선 안될 노동이다. 무엇보다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앓아가며 온 나라 노동자와 학생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그들의 일터와 가정을 정돈하며, 아이를 기르고, 병들고 약한 가족을 돌보는 일보다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나도 ‘동네 아줌마’다. ‘동네 아줌마’든 ‘동네 아저씨’든 모든 이는 반드시 노동에 제 값을 받아야 한다.
김혜영 기획취재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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