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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세월호를 영구 보존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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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세월호를 영구 보존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7.03.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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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 부근에 정박 중인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얹혀 수면 위로 떠올라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제공
세월호가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 부근에 정박 중인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얹혀 수면 위로 떠올라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제공

1,076일 전 그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의 절망은 304명 희생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이 사회 병폐의 깊이와, 희생을 키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목격한 충격이 뒤를 이었다. 세월호가 물 속에 잠겨있던 1,000여일 또한 몰상식의 세월이었다.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민간 잠수사의 사망에 동료 잠수사가 기소됐으며, 희생자 가족들에게 왜 그만 슬퍼하지 않느냐고 윽박지르는 일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떠올랐다. 국가는 다시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며, 상식은 회복되어야 할 때다. 세월호 인양은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입증하는 일이다.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써야 하느냐고 논쟁을 벌일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가족을 수습하지 못한 채 시간이 멈춰버린 국민에게 국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 미수습자 수습과 침몰 원인 조사가 끝나고 나면, 건져올린 세월호를 보존해 역사교육의 장소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참사를 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되새길 성찰과 반성의 공간으로 삼도록 하자. 세월호 참사는 돈벌이에 혈안이 돼 생명을 희생시킨 해운사, 이를 방치한 정부 기관의 뿌리깊은 유착 등 이 사회의 적폐가 응집돼 발생한 참사였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더욱이 구조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놀라운 무능과 직무유기가 한 학년이 통째로 사라지는 거짓말 같은 재앙을 현실로 만들었다. 평범한 시민들,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이 지금까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아무 잘못 없는 304명의 목숨을 앗아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라’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아이들을 뻔히 눈 앞에서 잃을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어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된 저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어떻게 용서를 구할 것인가. 세월호를 보존하고 때때로 보면서 이를 기억해야 한다. 건져낸 배를 그렇게 성찰과 치유의 공간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공직자라면 세월호를 의무적으로 견학하기를 바란다. 세월호 승객들이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것도 아닌데, 천안함 피격으로 희생된 장병보다 더 주목받고 기억돼야 하느냐고 수준 이하의 비교를 하는 이들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천안함 장병을 추모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세월호는, 천안함 장병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 한 국가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2001년 미국 9ㆍ11 테러는 약 3,000명의 사망자를 막지 못했지만 테러 후 희생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들의 국가는 건재했다. 천안함 장병들이 희생을 감수한 것은 재난을 당한 국민을 최후의 한 명까지 외면하지 않는 그런 국가를 위해서였다. 지킬 가치가 없는 국가라면 그들의 희생은 무위로 돌아간다. 공직자들에게 세월호가 중요한 이유는 희생자들이 나라를 지켜서가 아니라, 나라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공무원이 개인적 이득이나 나태함 때문에 제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빚어질 수 있는 재앙을, 무고한 희생을, 공직자들은 세월호를 보면서 상기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이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삼아 유가족과 생존자 등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준 일이야말로 한국의 비극이었다. 정치권의 무능과 리더십의 밑바닥이 드러난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는 동시대인으로서 같이 슬퍼할 일이며, 죄를 진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독일이 여전히 유대인 학살에 사죄하듯, 한국인이 일본에 지금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듯, 억울한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에 언제까지라도 함께 울어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는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고 함께 되뇌어야 한다. 세월호를 보존해 그렇게 하도록 하자. 슬픔을 멈추라 하지 말고 사회화해서 나누도록 하자. 세월호를 기리는 것은 부재했던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김희원 기획취재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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