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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폐주(廢主)

입력
2017.03.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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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4명의 폐주(廢主)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역설적이게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건국영웅 이성계다. 1398년 9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에 의해 폐위되는 참담한 운명을 맞았다. 영웅의 추락이었다. 그나마 실권자 이방원의 아버지여서 상왕을 거쳐 태상왕의 지위를 누리며 천수(天壽)는 누렸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 다음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폐주 광해군(光海君)이다. 지금 학계 일각에서는 중립노선 운운하며 그를 재조명하려는 시각이 있다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자기 정권도 유지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무슨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와중에 반정세력의 배려인지 여유인지 모르겠으나 겨우 죽음은 면해 18년 동안 강화와 제주도 등으로 옮겨 다니며 폐주로 살다가 폐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은 단종(端宗)이다. 1455년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됐으나 실은 폐주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년 후 노산군으로 강등됐다가 또 다른 숙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강원도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17살에 생을 마감했다. 조선 후기 숙종 때에 와서야 단종이라는 묘호(廟號)를 받아 그나마 사후에 명예를 회복했으니 광해군보다는 좀 낫다고나 해야 할까?

끝으로 1506년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폐주 연산군(燕山君)이다. 연산군은 사실 아버지 성종(成宗)의 그릇된 두 가지 유산이 만들어낸 희생자에 가깝다. 성종은 무리하게 왕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를 폐비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사약을 내려 죽였다. 게다가 신하들에게 휘둘려 이렇다 할 왕권의 기반을 다져놓지 못했다. 성종에 대해 학계의 평가는 후한 편이지만 직접 실록을 다 읽고 나서 받게 되는 느낌은 딱 하나, 신하들에게 휘둘렸다는 점이다. 또 여색을 밝히고 사치에 빠지는 등 조선의 국운을 쇠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충분한 인물이다.

연산군은 이런 구도를 깨려 했다. 사실 그에 앞서 비슷한 시도를 했던 인물이 예종(睿宗)이다. 우리로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 예종이다. 세조의 아들 예종은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대신들이 아버지 세조와 거의 대등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서 즉위하자마자 훈구대신들에게 맞섰다가 독살된 임금이다. 흥미롭게도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아버지와 그 신하들에 대한 원망과 원한을 품으면서 세조를 롤 모델로 삼았다. 그나마 성종보다는 세조가 신하들을 어느 정도 통제했던 때문일 것이다.

연산군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처음 나온 원자 출신 임금이다. 원자로 태어나 세자로 있다가 임금이 됐다. 문종은 1414년에 태어났는데 이 때는 그의 아버지 세종은 그냥 충녕대군이었을 뿐이다. 단종의 경우도 실은 어머니 권씨가 세자의 후궁으로 있다가 세자빈이 되고서 단종을 낳은 경우라 원자 세자 임금의 코스를 밟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수양대군은 늘 스스로를 단종보다 정통성이 강하다는 생각을 내세우곤 했다.

원자 출신 임금은 날 때부터 지존(至尊)의식을 갖고 있어 신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경우가 환국(換局) 정치를 통해 당쟁을 살벌하게 제압한 숙종(肅宗)이라면 실패한 경우가 바로 연산군이다. 특히 연산군은 박원종(朴元宗)을 비롯한 신하들에 의해 쫓겨난 유일한 폐주다. 훗날 중종(中宗)으로 불리게 되는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은 반정과정에서 한 역할이 전혀 없다. 앞의 세 경우에는 이방원, 수양대군, 인조라는 왕실의 인물이 있었던 것과 대비가 된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도 나라를 세운 초대대통령이 ‘폐주’가 됐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우리는 두 번째 ‘폐주’를 갖게 됐다. 하긴 윤보선 장면 최규하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째다. 어쨌거나 그 분이 마지막 ‘폐주’이기를.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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