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보 개선안 안 내놓는데, 지역가입자 소득으로 부과 마땅
이사장 때 담배소송 냈는데, 인권 향상·국민 관심 유도 위해 제기
퇴임 후 영월 생활은… 체험학교 육아사업 아내 도우며 동양철학 서적 독서
“세상이 변하면 프레임도 따라 변해야 한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자동차를 재산으로 보고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20년 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상식 밖의 이야기다. 당시엔 자동차가 있으면 잘 사는 사람이었지만, 이젠 차 없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 과거에는 자동차 재산 등 두세 가지 기준으로 소득을 추정해서 보험료 부과하는 게 틀리지 않았지만 이젠 다르다.”
김종대(68)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미스터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 건강보험이 도입되고, 확대될 때마다 그가 중심에 있었다. 공직을 떠나게 됐던 계기도 건보 통합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건보공단 이사장으로 복귀한 그는 임기 내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도 매달 5만여원씩 건강보험료를 냈지만, 수천만원의 연금 소득과 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나는 퇴임 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가 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된다.”
그가 지난해 11월 퇴임 직전 블로그에 남긴 한 마디는 짧지만 강렬하게 대중에게 꽂혔다. 불합리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의 당위성을 꼬집은 일성(一聲)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 관련기사)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세계 3번째, 아시아국가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였다. 그의 뚝심 있는 모습에, 취임 초기 낙하산 인사라며 극렬히 반대했던 건보공단 직원들 조차도 그를 할 일은 제대로 한 이사장으로 기억한다.
지난달 23일 김 전 이사장의 강원도 영월 집으로 찾아갔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는 집으로 들이닥친 기자들에게 “떠난 사람이 뭘 더 얘기하겠냐”며 손을 내저었지만 아직도 현안 관련 수치를 줄줄이 쏟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작심한 듯 ‘포정해우’란 고사성어를 꺼내며 “정책행정이라는 건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소를 잡았다는 백정 포정처럼 행정도 예술의 경지가 돼야 마땅한데, 요즘엔 어려운 것을 안하고 도망만 가려고 한다”며 정부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꼬집었다.
올해 초 건보 부과체계 백지화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개선안 발표의 시점이나 구체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퇴임하자 영월로 내려왔는데, 어떻게 지내나.
“체험학교 같은 육아 사업을 하는 아내가 아이들 농촌체험 하라고 만든 곳이다. 평소 혼자 지내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이 온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 미뤄뒀던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을 다시 꺼내보고 있다. 도덕경이나 사기를 보면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웃음).”
-1999년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 통합에 반대해 면직까지 됐었다.
“보험료 부과를 소득기준으로 하는 건 맞지만 당시에는 소득 파악이 다 안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행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참모들은 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만 안 된다고 해서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에서 직권 면직됐다. 그런데 소득 기준 통합을 2000년부터 4년 정도 시도했는데 안 됐다. 이게 안 되니까 성별 등 다른 부과 기준들을 계속 추가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갖고 있다고 내는데, 어떤 사람은 월급 외 소득이 7,200만원이 넘어도 안 내고…. 점점 편법을 더하다 보니 한계가 온 거다. 그래서 2011년 11월 건보공단 이사장으로 발령받자마자 문제를 고치자고 나선 거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뭔가.
“건강보험은 질병 치료비를 지원하기 위해 가입자가 각출해서 돈을 내는 것으로 상부상조 정신이 깔려있다. 또 사회보험이라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내고 적은 사람은 덜 낸다. 그런데 현행 체계는 소득이 없는데도 재산에 보험료를 매긴다. 재산을 팔아 보험료를 내라는 얘긴데, 그래서 소득 위주로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건 망설이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일이다.”
-소득이 아닌 재산에 부과하는 규모가 얼마나 되나.
“2012년 총 소득 중 국세청에서 건보공단에 통보하지 않거나 통보했지만 실제 소득액보다 적게 매긴 게 합하면 251조3,000억원이다. 이건 다 파악된 소득인데도 건보료를 물리지 않는다. 그런데 자동차ㆍ나이ㆍ남녀 성별ㆍ재산 등 소득이 아닌 것 90조원에 보험료를 매긴다. 파악된 소득에는 안 매기고, 소득이 아닌 것에 자꾸 끌어다 매기니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왜 부과체계 개선을 안 하려고 하나.
“어려운 정책은 안하고 도망가려고 한다. ‘내가 독립 운동 안 해도 대한민국 독립하지 않았느냐’는 것인데 그래도 해야 한다. 책무니까. 세금 받아 먹는 공무원이니까. 그래서 공무원이 힘든 거다. 장자를 보면 ‘포정해우’란 얘기가 나온다. 전국 시대에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소를 잡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백정 얘기다. 19년간 소를 잡으니 살과 뼈와 힘줄 그 틈새가 다 보인다고 했다. 행정도 이 정도로 예술이 돼야 하는 거지.”
-정부가 보험료 오르는 고소득자들 의식하는 건가.
“나처럼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돼 있어서 한 푼도 안 내는 사람이 2,052만명이나 된다. 이 중에 소득 있는 사람 얼마나 많겠나. 물론 보험료 더 내라고 하면 반발하겠지만, 부과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면 그렇게 과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2012년부터 부과체계 개편 적기라고 했는데 이미 2015년이다.
“당시에 했어야 했다. 갈수록 시기를 놓치고 있다. 기준이 불합리 하니까 체납 보험료가 2조3,000억원이나 된다. 생계형 체납자도 많다. 그들을 위해 기준도 낮춰야 한다. 부과체계를 개선해야 건보가 지속가능 하다. 매년 5,160만건의 건보료 민원이 제기된다. 제도가 세상에 못 맞추면 폭발하게 된다.”
-담배소송도 복지부와 갈등 빚고 어렵게 제기했다고 들었다.
“2012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서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손실액이 1조6,000억원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담배를 피우면 암 발생률이 2.9~6.5배 높아지기 때문이다. 건보 제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외부 요인이 담배다. 미국 캐나다가 소송을 했고, 가장 강력한 금연억제정책 중 하나가 소송이라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히고 있다. 물론 반발 크고 어렵지만 소송 과정에서 언론이 계속 보도를 하게 되면 담배의 해악이 다 밝혀지게 된다(웃음). 소송 결과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계속 끌고 가기 위해 시작한 소송이다.”
-보건복지부의 반대가 무척 심했는데.
“주요 소송을 하려면 건보공단 이사회 의결을 얻어야 한다. 담배 소송을 안건에 넣자 경제부총리실, 대형 로펌 등에서 ‘정말 소송하는 거냐’는 문의가 빗발쳤지만 직접적 압력은 없었다. 나는 당시 90% 정도는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였지만 ‘결정된 것 없다, 내 결심도 안 섰다’고 답했다. 그런데 복지부가 담배소송을 이사회 ‘의결안건’이 아닌 ‘보고안건’으로 바꿔 올리라고 지시했고, 기자들에게도 이 지시 내용을 알려 사실상 ‘의결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이사회 직전에는 2,3개 정부 기관에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니 이사회 일정을 늦추면 안 되느냐’고 연락이 왔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이사회를 늦출 이유가 없었다. 소송 권한은 공단 이사장에게 법적 제도적으로 부여돼 있다. 그래서 ‘그대로 가자’고 했다.”
-국민적 관심이 컸는데, 이사회 분위기는 어땠나.
“공단이 생긴 이래 방송 카메라가 그렇게 많이 온 건 처음이었다.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사회에서는 다 찬성했는데 2명이 반대했다. 보건복지부 국장과 기획재정부 국장이었다.”
-담배소송 해놨더니 정부가 담뱃값을 올렸다.
“공단이 담배 소송 안 했으면 담뱃값 올렸겠나. 공단에 감사패 줘야 한다.”
-담배소송은 어떤 의미가 있나.
“담배 회사들이 소송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아시아가 담배 팔아먹는 데 ‘호구’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는 나중에 못 끊게 애들한테 담배 준다. 담배 소송은 인권에 관한 문제다. 우리나라 소송이 담배 많이 피우는 중국 일본에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 국격을 올리는 소송이기도 하다.”
-공단의 빅 데이터가 소송에 큰 역할을 했다.
“공단은 가입자들의 방대한 자료 갖고 있는데 처음으로 이걸 활용했다. 최소 3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담배 피운 사람 중 고등법원에서 암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한 3,448명을 추렸다. 담배회사에 537억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담배회사 측은 피해자 개별 입증을 요구한다.
“담배회사는 빅 데이터로 뽑은 피해자 모두가 담배 때문에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개인별 인과관계를 다 증명하라는 건데, 처음 소송 준비할 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행정은 100%가 안 되면 어느 허점에서 찔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송 이길 것으로 전망하나.
“아기 안고 있는 엄마가 있는 버스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상상이 가나. 그게 불과 얼마 전이다. 지금은 ‘야만인’이 된다. 그만큼 세상은 변했다. 세상의 흐름에 따르는 거라 이긴다고 확신한다.”
-이사장 취임 때 1인 시위를 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했던 직원이 찾아와 하루 밤 자고 갔다고 들었다.
“‘죄송했다’ 하길래 ‘지나간 일이다. 그 때는 그게 당신의 소신이니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데도 반대한 거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거여서 좋다. 아침에 내가 고명 얹어서 떡국까지 끓여줬다.”
-현재 건강보험 피부양자인가.
“공단이 결정하는 거다. 보험료를 내고 싶어도 신청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지역가입자가 되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이사장이었던 나도 모른다. 담당자도 부과 체계 일람표를 찾아서 몇 번을 계산해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말이 안 되는 제도다. 개선이 시급하다.”
-후배 공무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에 논란이 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만 봐도 의료서비스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개념적인 얘기만 오가는 것 같다. 세계에 없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일본은 한방 없앴고 중국은 한방이 양방에 흡수돼 있다. 양ㆍ한방을 통합한 의료서비스 의약품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걸 주목해야 한다.”
영월=채지은기자 cje@hk.co.kr
영월=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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