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김종인에 서운하지만 총선 승리 돕겠다” 제하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전문입니다.
-‘99% 당선 확실’이라는 예상도 있었는데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반발도 거셌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
“공천배제(컷오프) 된 상태에서도 단 한 순간도 ‘탈당’이라는 단어는 떠올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치를 그만해야겠다’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실은 굳이 이런 순간이 아니어도 정치를 내가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자식이 아들만 셋인데 아이들이 자라나고 또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를 계속 해야 하는 건가 고민했다. (정치를 하기 전) 학원 사업을 할 때는 돈을 잘 벌었고 정말 아이들에게 풍족하게 해줬다. 그러나 애들이 ‘아빠 (정치) 그만 하면 안 되냐, 우리 너무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나. 지금이라도 그만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 텐데’하는 그 기억이 있더라. 풍요롭게 여유롭게 살던 기억이. 애들이 아직 어려서 그렇지만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요즘 청년 실업에 금수저, 흙수저, 3포 시대. 그런데 이대로 가면 아들 셋 결혼시킬 때 전셋집도 마련해 주지 못하게 생겼다. 그래서 애들한테 공부하는 것 까지는 아빠가 어떻게든 대줄 수 있지만 그것 말고는 스스로 독립 해야 한다고 항상 말하고 교육한다. 그게 솔직히 너무 미안하다. 처음에 정치 시작할 때 한창 사업하다가 몸만 빠져 나오고 다 넘겼다.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은 오로지 사명감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낳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등 이런 게 솔직히 너무 부담이 된다. 또 하나는 우리 집사람을 봐도 노후가 너무 불안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크다. 정치를 그만뒀을 때 그나마 힘 있을 때 그만 둬야 노후 대책이라도 있지, 국회의원은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연금이 있나 뭐가 있나. 거기서 오는 고민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가장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조사해보니 내가 19대 국회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언론에 63회 나왔더라. 특히 보수 언론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 말이다. 우리 애들이 그걸 다 알고 있어 힘들어 한다. 우리 애들도 이제 커서 인터넷 댓글 같은 것 다 본다. 처음 출마 결심할 때도 마지막에 흔들렸던 것이 이유 없는 익명의 공격을 당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이걸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 때 제일 망설여지더라. 집사람이 용기를 줘 결심은 했는데 지금 그게 너무 심하다. 애들한테 큰 상처가 된다. 18대 국회에서 떨어졌을 때 몇몇 언론이 ‘보복 보도’를 했다. 큰 애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상처를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5년 동안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더라. 전교 1등 하던 아이가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19대 국회에서는 (언론의 행태가) 훨씬 몇 배로 더 심했다. 나는 두렵지 않은데 가족들의 이런 부분 때문에 정치를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해 실제로 집사람에게 많이 상의를 했다.
처음 정치 시작할 때 사적 욕망이 공익적 욕망을 넘었을 때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적 욕망이 공익적 욕망보다 크진 않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책임과 걱정으로 늘 고민이다. 대중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이 참에 잘 됐다, 그만두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사업을 하면 정치적 반대자 없이 우리 가족만 위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 싶었다. 탈당 이런 개념은 지금도 없고, 대신 아예 정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컷오프 이후) 하루 동안 휴대폰이 쉬지 않았다. 계속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는데 어느 누구하고도 통화 안하고 그냥 멍하니 하루 종일 있었다. 둘째 날부터 인터넷 뉴스 댓글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SNS 민심은 당 지도부 원망과 비판, 그리고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오면 우리가 다 자원봉사 해주겠다. 그게 다였다. 셋째 날인가 집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더라. 제 서재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이 있다. 서재 가서 어머니 사진도 보고 아버지 사진도 봤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시더라. 평소에도 사진하고 대화를 많이 한다. 그런데 대답을 안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글(어머니, 이럴 때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를 썼다. 어머니에게 물어봤지만 더 크신 어머니(지지자들)에게도 물어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어본 것에 대해 답변이 99%가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였다. 그러니 더 미치겠더라. 페이스북 쪽지와 트위터 쪽지에 동시에 장문의 편지들이 막 오기 시작했다. 진보 학자들, (도올 스님 같은) 유명한 분들이 정 의원 탈당하면 안 된다. 오히려 당의 지원 유세를 해줘라. 그것이 당 지도부에 대한 가장 큰 복수다. 이런 메시지들이 왔다. 공개적 댓글(탈당 무소속) 다른 반응이 3일째부터 오기 시작한 것. 정치를 계속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의 고민이었지 탈당을 하느냐 마느냐는 아녔다. 그런데 점점 3, 4일 째 되면서 도대체 내가 무엇이건대, 도대체 내가 뭔데 나한테 이렇게 사람들이 같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이렇게 울분을 토해낼까. 그러면서 ‘내가 내가 아니다’ 이런 생각 했다. 정청래가 나만의 정청래가 아니구나. 그 흐름을 제가 파악하게 됐다. 그래서 처음 정치를 왜 했고 앞으로 무엇을 알 것인가를 봤을 때 지금 내가 여기서 정치를 포기하는 것은 나를 통해서 울분을 토해내는 이분들에 대한 배신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치를 해야겠다. 왜냐면 나보다 더 어렵고 노후가 더 불안한 사람들도 많다. 이정도 가지고 가족의 사사로운 행복이나 생각하는 자신이 부끄럽더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 지나친 이기주의라는 생각 들었다. 그래서 그런 선언을 하게 된 거다.”
-공천 배제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큰 아들이 지금 외국에 있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 왔다. 그거 보고 엄청 울었다. 아이가 다 컸더라. 컷오프 된 날(3월10일) 오전 11시 40분에 바로 온 거다. 정치하는 사람도 똑같이 아버지고 또 남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겉보기엔 그렇지만 가족 안에 있으면 정말 나약한 사람이 된다. 하여튼 (아들의 메시지를) 보면서 공적 사명감이 더 들었다. 개인의 이기주의나 가족의 행복보다는 초심도 생각이 많이 나고. 그래서 다시 용기를 냈다.”
-총선이 끝나면 다른 직업을 구하지 않는 한 실직 상태가 된다. 부인의 부담이 더 커질 텐데 뭐라고 하던가
“우리 집 사람은 아무 말 안 한다. (지난해 공갈막말 관련해서) 징계 받았을 때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지금도 별 얘기 안 한다. 말하면 제가 더 힘들어 할 까봐 얘기를 안 하는 거다. (당의 선택을 따르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문자만 보냈더라. 원래 (아내와) 상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건 중요한 문제라 오후에 미리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집 사람이 짧은 문자 보내 왔다. ‘여보, 너무너무 눈물이 나네요. 멋진 남편 불쌍한 우리 신랑’ 이 문자가 다다. 아직은 걱정해서 해결될 문제 아니고 닥쳐서 풀어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든 손혜원 홍보 위원장을 당선 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손 위원장이 당선 되면 나도 배지 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 잔류) 발표하고 그 다음날 전화가 막 오기 시작하는데, 다들 선거사무소 개소식 와서 축사해달라는 거다. 그래서 거절 하나도 안 했다. 다 한다고 했다.”
-당 잔류 선언 이후 다음날인 1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만났는데 좀처럼 사과를 하지 않는 김 대표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당의 선택을 따르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김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그 이전에도 자주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 둘이 밥도 먹은 적 있고, 김 대표가 당에 영입돼 와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이 아마 나 일거다. 17대 국회에서도 여러 번 봤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다. (김 대표가) 한번 보자고 해서, 못 볼 것도 없겠다. 전날 사람들도 찾아오고 좀 과음을 했다. 친한 친구와 새벽 1시40분까지 술을 마시는데 1시에 김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못나가겠다 전화를 하려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갔다. 있었던 얘기를 다 하면 좀 부적절 할 것 같고. 어쨌든 내게 미안하다고 얘기해서 ‘미안한 짓을 왜 했느냐’고 답변했다. 이어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당의 주인이다. 도와달라고 말을 하든 안 하든 나는 당을 돕는다’라고 얘기했다.”
-당직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자리를 부탁하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특별위원장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못 맡겠다, 안 하겠다고 했다. 대신 당은 내가 주인이고 당원이 주인이니 당은 내가 바로잡겠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오늘 이 순간은 비판하지만 총선 끝날 때까지는 대표에 대해 칭찬만 하고 다니겠다. 김 대표와 만나 한 첫 인사가 ‘공천 탈락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그런데 그 다음 얘기는 밝히지 않겠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을 먼저 자신의 지역구에 추천 한 건가, 아니면 지도부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가
“거의 ‘동시’라고 표현했었다. (김 대표와 회동이) 끝나고 나서 핵심주요 인사라고 하자, 그 분이 대뜸 나한테 ‘손혜원이어야만 마음이 풀리겠나’라고 말하더라. 따로 나와가지고 둘이 있었는데, 그분은 그걸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지도부에서 눈치를 챘나 보다. 그래서 내가 (마포 을로) 보내면 당선 시키겠다고 했다. 나한테 (당에서) 다른 카드는 제시하지 않았다. 김 대표와 만나서 1시간30분 동안 내가 이 지역구를 어떻게 힘들게 관리해왔는지를 절규하듯 주장했다. 그리고 여기는 내가 10년 넘게 텃밭 다져왔기 때문에 날 빼고 누구라도 당선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아는데, 그게 오판이라는 것을 깨우치도록 김 대표에게 설명했다. 여기는 20ㆍ30ㆍ40대의 젊은 유권자 비율이 61.5%다. 나 아니면 안 되는데 그걸 오판했다. 여기 한나라당이 내리 3선을 한 지역이다, 12년을 새누리당 정권이 가지고 있던 곳이다. 관악이나 강북처럼 호남인들이 결집한 수도권 지역도 아니고. 그런데 이것은 정확하게 한다면 열심히 농부가 밭 갈아 수확한 것을 도둑질 하는 거다. 너무나 몰염치한 거다, 제1야당 공당의 공천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이건 뭐 도둑들이다.”
-10일 컷오프 결정 이후 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아직 통보를 받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까지도 못 들었다. 재심 결과도 뉴스보고 알았다. 그래서 김 대표를 만났을 때 말했다. 당은 정권장악이 목표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게 조직이다. 한 사람이 천하이고 우주다. 우리 지난번 대선 때 사람이 먼저다 캐치프레이즈 아니었나. 그런데 같이 있는 당 조직의 동료들의 목치며 가족에게 사망통지서도 보내지 않는 비정한 당 지도부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라고 항의했다. 지금 전쟁으로 치면 애국하러 전쟁 나간 전사 죽었는데, 집에 사망통지서도 보내지 않는 거다. 원래 전우 죽으면 묻고 군복 같은 물품을 집으로 보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통보도 안 했다. 이건 정치의 기본인 사람을 중요시 하는 것 부터가 안 된 반인권적 작태다. 그러면서 무슨 사람들 마음 움직여 표를 달라는 건가. 김종인 대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당이 이렇게 못하는 거다. 그럼 다른 비상대책위원들이나 공천관리위원들이라도 바로 잡아야 했다. 당 대표는 일이 너무나 복잡하고 힘들어 어떻게 그것을 일일이 하겠나.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해찬 의원도 사전에 용퇴하도록 설득 작업 하자 했는데 묵살됐다. 어느 비대위원이 김 대표가 직접 손편지를 쓰자, 친서라도 (이 의원에게) 전달하자 했는데 실현이 안됐다고 들었다.”
-손혜원 위원장은 본인이 서울 마포을에 나간다는 것은 언제 알았다던가
“발표 하루 전인 목요일(17일) 밤에 손혜원 위원장한테 전화가 왔다. 손 위원장 전화가 와서 자기도 그 때 알았다고 하더라. 비례 1번을 생각하고 있는데 꼭 가야겠느냐. 편한 길이 있는데 꼭 거기, 가장 험지인데. 그런데 손 위원장이 ‘당 지도부와 당 대표가 저지른 일을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그리고 ‘정 의원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냐. 나는 정청래 구하고 당 구하는 심정으로 내가 가겠다’라고 당 지도부와 상의하기 전 (손 위원장이) 나한테 먼저 얘기했다. 당 지도부에서도 손 위원장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고집을 안 피우더라. 본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여기 오고 싶었겠나. 나를 신뢰해 온 거다. 자신이 간다고 하면 정청래 구하고 당 구하고, 또 (정청래가 나를) 당선 시킬 거다, 이런 신뢰가 서로 있었다. 그게 용기를 낸 배경이었던 것 같다.”
-인간 김종인에게는 서운하더라도 대표 김종인에게는 서운해 하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김 대표에게) 서운하다. 그것까지 부정하면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거고 거짓말 한다고 생각할 거다. 나도 서운하다, 여러분도 서운하지 않나. 그런 말 없이 대표 비판 말라고 하면 내 말도 안 듣겠지. 그건 서로 간의 일체감과 동지감을 표현하는 거다. 그 말까지 안 하면 내 말엔 진정성이 없는 거다.”
-당선 가능성이 월등한 정 의원을 지도부와 총선기획단에서 ‘정무적 판단’에 따라 컷오프 했다고 밝혔다. 그 정무적 판단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무적 판단이 아니라 정무적 오판이다. 이철희 선거대책위원이 뉴파티 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소위 10계명을 낸 적 있다. 그 중에 ‘막말의원에게 공천 주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기획됐다고 본다. 왜냐면 이 지역에는 대체 인물이 불가능하고 나를 컷오프 시켰을 때는 진보 개혁적인 지지자들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자를지 몰랐다. 그럼 선거를 치를 수 없는 거다. 그런데 나를 자르면 오른쪽(보수 진영) 사람들이 박수치고 올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핵심 지지층 무너졌다. 그런데도 SNS 우리 안 한다, 모른다는 게 자랑 아니다. SNS에서 떠드는 거 며칠 지나면 끝난다, 그렇게 판단하는 건 시대의 흐름 모르는 거다. SNS는 이제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까지 연결돼 있다. 온라인에서 와글와글 하니 당장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더불어콘서트에 지지자들 안 가잖아. 2016년 총선 앞두고서 (당 지도부가) 기본적 소통 수단에 무지한 건 통탄할 일이다. 전혀 공부가 안 된 사람들이 입시시험 보고자 하는 꼴이다.”
-당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힌 다음 ‘정청래가 남기로 해서 수도권에서 10석은 건졌다’는 말들이 나온다. 컷오프가 결국 전략적으로 성공한 것 아닌가
“이건 확신하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 페이스북 쪽지 오면 ‘의원님 재입당 하겠습니다’는 내용이 많다.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다. 수도권의 동료 의원들뿐만 아니라 도종환 의원(충북 청주흥덕)에게도 전화를 받았다. 40명 정도에게 전화 받았다. 선거운동을 못하겠대. 지하철 역 앞에 서있으면 하루에 10명 정도 와서 욕한다더라. 정청래 잘라놓고 선거운동을 하느냐고, 그래서 겁 나 동네를 못 돌아다니겠다고 했다. 도종환 의원이 아침에 조기축구 가면 자기 얘기 들으려 안하고 ‘정청래 어떻게 할 거에요’만 물어오니 다들 망연자실한 거다. 어떤 여자의원 전화 붙잡고 울면서 실제로 내게 부탁했다. 의원님 너무 미안한데 우리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도와달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다 말은 못하지만 탈당하면 우리 다 죽는다, 겁에 질려가지 있다. 그러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총선 운동은 두렵고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심지어 모 후보는 지역 선거캠프 사무실로 전화가 왔는데, 아파트 베란다에 (2번 후보) 낙선 시키자는 플래카드를 달겠다고 했다더라. 그런 게 하나 걸리면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르나.”
-하루 아침에 전국구 스타가 돼 버렸다. 단순히 정청래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더민주 지지자 나아가 야권 지지자들까지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본인의 컷오프에 반발했다고 보나
“어떤 네티즌들은 내 의정활동을 (인터넷에) 퍼 나르더라고. 이런 사람을 왜 자르냐면서. 나를 국회의원보다는 친구, 삼촌, 아빠처럼 일체감 가진 사람 많았던 듯 보인다. 낙천이 아니라 내가 잘렸다, 그런 심리적 일체감으로 그 분들이 폭발한 거다. 그게 첫 번째 요인 같고, 아이고 울지 말아야지(눈물을 글썽임). 두 번째는 나도 이번에 확인을 했는데 제가 ‘나는 꼼수다’부터 지금까지 팟캐스트 계속 했지 않나. 그래서 나에 대해 다른 국회의원보다 많이 알고 있고 좋은 감정을 갖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거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몰상식이라 판단한 거다.”
-문재인 전 대표 체제였으면 이런 일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나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도 내가 잘렸을 수 있다. 그러나 컷오프 이후 만약 성난 민심을 보고 재심에서 구제 됐을 거다. 그런데 이 지도부는 아직도 모른다. 이게 총선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무지한 지도부지. 결론을 내렸어도 이게 아니구나 했다면 그 결정 되돌려야 한다. 재심이라는 안전판 있지 않나, 재심 올라오면 수용해야 하는데 마치 국민과 싸우려는 자세였다. 그래서 굉장히 심각하게 보는 거다. 국민들이 와글와글하고 아파하고, 정청래 살려내라 하고 당 지지율이 전주 보다 5%포인트 가까이 떨어져도 꿈쩍 안 한다. 불통 지도부다. 그래서 내 개인의 일이 아닌 것으로 돼 버렸다. 그래서 당 지도부가 당황하고 이 문제 때문에 침울하고 그런 것 같더라. 비대위원들이 피부로 느끼는데 딱 한 분은 그걸 모른다. 당 지도부에서도 전화 많이 왔다. 선거 못 치르겠다고. 그런데 한 사람의 고집으로 인해 그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표 체제였다고 해도 자신이 1차 컷오프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그런 일 벌어졌으니까, 문재인 체제에서도 그런 일 일어날 수 있겠다. 이게 그렇게 문제 되는지 몰랐다. 경선에서 10% 감점은 각오했지만 그게 공천배제 사유 될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당도 당헌ㆍ당규로 움직이는 건데 그걸 뛰어넘는, 국가로 치면 초법적 상황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당을 지지하는 일부에서는 그 동안 보여온 모습들을 근거로 컷오프 결정에 대해 ‘그럴 만도 하지’라는 얘기들도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은 앞뒤 생각 없이 하는 거다. 지금 입증 됐듯이 서울 마포을 지역구 하나가 날아가는 것 아니다. 선거는 이기려고 하는 거고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몇 석이 중요하다. 전쟁에서 적군 총 쏘는 게 마음 아프다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맞아 죽는다. 총선은 전쟁이다, 그럼 이겨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정당이 돌아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컷오프 이전부터도 멀리 보고 더 차분하고 진중한 모습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지적에 동의하는지,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나
“나보고 가볍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묵직하게 말 느리게 하지만 정치적 입장을 자주 바꾸고 탈당, 복당하는 사람이 가벼운 정치인이지 내가 가벼운 건가. 가벼운 정치라는 개념을 바꿔야 한다. 대중들은 편안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고 셀프디스 하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대중친화적인 소통 방법을 놓고 가볍다, 무겁다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념 자체가 잘못 된 거다.”
-세월호 참사 때 24일 동안 단식을 하거나 무거운 문제제기를 해도 가벼운 이미지 때문에 그게 덮어지는 단점도 있다
“나는 국회의원 중 드물게 ‘노사모 운동’을 해본 사람이다. 그걸 하기 전까지는 나도 권위적이었다. 노사모 운동을 하며 알을 깨고 나온 거다. 함께 운동을 하는 분들이 사회적으로 못나가는 사람 아닌데도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했다. 똑같이 사무실에서 청소나 설거지 하는 것 보며 내 자신을 스스로 깨려고 노력했다. 그 계기 아니었다면 나도 말 느릿느릿하며 개기름 낀 꼰대처럼 활동했을 거다. 그 때 확 깼다. 나도 돈 푼 깨나 번다고 가르치려고 하는데 대중은 이미 똑똑하다. 그러니 대중 친화적 의원이 되자. 그럼 내 자신을 내려놔야 한다. 국회의원 포함 정치인은 세 가지가 중요하다. 팩트ㆍ의도ㆍ태도다. 근데 팩트는 사실을 말해야 하고 의도는 선한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하고, 태도는 권위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때는 한 없이 낮아지는 거다. 대신 또 하나 대정부질의 할 때나 상임위원회에서 질의할 때는 굉장히 무섭게 한다. 왜냐면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이잖아. 예산을 감시하고 법을 만들고 정부를 비판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자기 처지나 조건, 환경 때문에, 재선과 지역구를 위해 타협하는 이런 모습은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정부 비판과 견제인데 쉽게 얘기하면 장관 혼내주라는 거다. 총리 혼내주고 대통령 잘 못하는 것 지적하고,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그래서 저는 서강대교 건너기기 전 후가 완전히 다르다. 모드 전환이라고 하지. 여의도로 건너갈 때는 옷 매무새 다시 하고, 목에 힘 주고 어떠한 권력과도 비타협적으로 싸워야겠다, 근엄과 엄숙으로 간다. 그런데 퇴근할 때는 모든 걸 무장해제 한다. 그래서 몸 풀고 온다. 여기 동네에 와서 13년 정치 하면서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화낸 적 없다. 완전히 극과 극인 거다. 주로 동네에서 우리 현장에서 만나는 국민들 대하는 태도와 대정부 질문에서 국무총리나 장관을 혼내는 장면과는 너무 대비가 되는 거다. 팟캐스트 나가 웃기고 유머스럽게 하는 것 나를 만나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나의 다른 면을 모르는 거다. 여의도에서 활동하는, 노는 모습만 보고 그 이상의 것을 못 보는 거다.”
-앞으로 남은 총선 기간 동안 어떤 역할을 하실 계획인가
“모든 일에는 모순 있고 충돌이 있다. 손 위원장은 어디 가지 말아라, 여기서 자기 손 붙잡고 24시간 뛰어달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전국 돌며 당 후보들 돕자고 했는데 이제는 본인도 불안하잖아.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요청이 온다. 다른 사람 다 필요 없다. 무조건 정 의원이 내려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도 두 군데 다녀왔고, 내일도 간다. 부산도 다 들러달라고 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내가 ‘김무성 저격수’라는데 그런 생각 없이 그저 김비오 예비 후보와 워낙 친하고 울고불고 하면서 선대위원장 해달라고 해서 한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지역 상대 후보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더라고. 거기 말고도 많은 곳에서 요청이 와서 가급적 짧게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니려고 한다.”
-보통 공천 탈락된 의원들은 후임자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손 위원장은 핵심 참모이자 홍보위원장으로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할 것 같은데,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손 위원장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내가 보기에 손 위원장은 비례대표라는 비단길, 꽃길이 있는데 험한 가시밭길 와서 하는 게 짠한 거다. 한 편으로는 고맙고도 미안하다. 그래서 19일 첫 공식회의를 아침에 하면서 ‘어렵겠지만 손혜원 당선은 정청래의 당선이다, 정청래를 위해 뛰는 것 이상으로 뛰어달라. 그렇게 되면 마포을에 국회의원이 2명 당선되는 거다’ 그 논리로 지역주민들을 설득해달라고 했다. 손혜원이 당선돼야 정청래가 힘이 있다 보여주는 거니까 진짜로 딴 맘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말 그대로 정치적 립서비스나 레토릭 아니라 지금은 손혜원 정청래가 같은 사람인 거다. 그래서 정말 내가 있는 힘껏 뛸 거다. 지금까지 내 총선 때 보다 더 열심히 뛴 게 문재인 전 대표의 대통령 선거였다. 이 지역구에서만 (문 전 대표가)2만 표 차이로 승리했다. 내 선거 때는 발가락 안 찢어졌는데 대선 때는 발가락이 다 찢어졌다. 보통 내 선거 때는 오후 7시 되면 집에 들어간다. 4년 내내 선거운동을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조심해야 하는 승리를 확인하는 기간이다. 그런대 문 전 대표 대선 때는 밤 10시까지 돌아다녔다. 지금 총선에서도 밤 10시까지 뛰어야겠다, 위험 감수하고라도 호프집 같은 곳까지 다닐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김종인 대표와 전략적 제휴를 하게 됐는데 어떤 총선 전략을 세워야 할까
“김 대표에게도 분명히 얘기했다. 새 시대와 흐름에는 못 미치는 지도부와 대표가 들어왔다. 뭘 모르는 사람이 와서 하는 거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그 부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할 생각이다. 지금은 말문을 닫고 있다. 선거는 몇 석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것을 떠나 정당에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부분은 따로 엄청나게 통렬하고 강렬하게 비판할 생각이다. 세상에 멀쩡한 사람 잘라놓고 사람 못 찾아서 찾아 다니는 꼴이 말이 돼나. 축구선수 공 잘 차는 선수를 경기장에서 빼놓고 그만한 사람이 없는데 벤치의 다른 선수들에게 ‘너 경기 나갈래’ 하고 있는 거다. 축구 감독으로는 계약해지 감이다. 당 대표로서도 이건 너무 뭘 모르는 거고 그 자체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나. 경쟁력, 저 사람이 약간 문제 있어도 저 사람 있으면 당선 안 된다면 공천해야 한다. 그런데 경쟁력 있는 사람 잘라놓고 대신 그 곳에 갈 사람도 없어 후보 찾아 삼 만리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총선 몇 석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정당정치의 기본 흔드는 문제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더민주에게 필요한 총선전략이 있다면
“주식하는 사람은 경제 몰라도 알아서 투자를 한다. 마찬가지로 후보자들은 여러 가지를 몰라도 이 사람이 표에 도움된다 아니다라는 것을 다 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후보들이 우리 지역에 지원유세를 와달라고 할 때 누구를 부르느냐, 그건 주식 하는 사람이 (주식이)오른다 안 된다는 것과 후보자들이 표가 된다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자랑하는 것 아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은) 다 필요 없다, 정청래만 와라, 하고 있다. 그러면 나도 몸이 두 개 아니야. 마포을도 (손 위원장)당선시켜야 하고 전국도 가야 한다. 진짜 24시간 쪼개 써야 한다. 제가 봤을 때 김 대표 오라는 지역은 별로 없을 거다. 지금 내가 만약에 아무런 정치적 행위 않고 가만 있었으면, 김 대표 가는 곳 마다 계란 맞았을 수 있다. 계란 던지는 사람들은 열혈 핵심 지지층이다. 당 대표가 계란 맞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면 그 선거 어떻게 되겠나, 해보나마나다. 당 대표 계란 세례는 내가 막았다. 이 선거에 김 대표가 전면 서면 안 된다. 핵심 지지층이 (김 대표를) 보면 또 폭발한다. 그러니 전면에서 물러나 있었으면 하는 게 첫 번째 전략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지역에)안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웬만하면 화면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게 첫번째 전략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전면에 안 나타나기로 했는데 그럼 누가 선거를 지휘하나
“그래서 정봉주 전 의원이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총선은 정청래로 시작해 끝난다’고 예측했다. 불행해도 그럴 것 같다. 오늘 기동민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다녀왔다. 그런데 사무실 아래에서부터 지지자들이 악수하고 사진을 찍자고 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더라고. 그런데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게 잘못하면 또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객관화해야 한다. 이럴 때 진짜 겸손해야 하고 그 분들이 왜 그러는지, 정청래 개인이 아니라 총선 승리에 대한 열망과 정청래에 대한 부채의식이 응축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정청래라는 이름을 우리 아버지가 지어줬지만 국민들이 이번에 새롭게 지어준 이름이다. 이제 나조차도 내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일부에서는 “정청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안되지”라고 하면서 또 다른 일부에서는 “정청래 같은 사람이 한명은 야당에 있어야지” 라고들 했는데 다음 총선에서는 못 나서게 됐다. 본인을 대신해 당 대포 역할을 할 후임자의 싹수가 보이는 인물이 있나
“표창원 비대위원과 통화를 했다. 제가 없으니 당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표 비대위원이)꼭 당선 됐으면 한다. 정청래의 뒤를 이을 자질을 갖고 있다. 선거사무소 개소식 와달라고 제일 먼저 내게 전화한 게 표창원이다. 그리고 정말 걱정된다. 옳은 소리 바른 소리 하면 당에서 공천 멀어진다, 각별히 주의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당직 맡으면 할 소리 못하는 구조가 우리 당이다. 본인도 비대위원 해서 나에 대해 SNS에 해명글을 썼다가 유탄을 받은 바 있다. 표 비대위원이 잘 해줬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18대에서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서도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했다. 국회의원은 전직이든 현직이든 똑같이 국회의원이다. 원외활동도 원내 못지않게 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언론에서 ‘친노나 친문 핵심’라고 분류하고 있다. 이런 분류가 맞다고 생각하나
“농담처럼 ‘나는 친노도 비노 아닌 홀로. 볼의에는 격노, 소주에는 진로다’라고 얘기한다. 나는 언론이 그렇게 분류하는 것에 대해서 언론 상업주의이자 편의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선언문도 불출마 선언문이 아니고 당을 지키겠다는 선언문이다. 나는 백의종군이나 선당후사나 탈당하지 않겠다, 잔류하겠다는 말도 쓰지 않았다.”
-내년 대선 정권교체 목표라고 해. 문재인 전 대표 시절 지도부를 했다는 인연 말고도 지난해 문 전 대표를 겪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나 생각이 달라지신 게 있나
“문재인 전 대표는 장점이 단점이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다. 그게 당 대표 하는 데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당 대표는) 고도의 전략전술을 구사해야 하고 때로는 포커페이스도 해야 하고 때로는 안 할말도 해야 한다. 언론이 물어본다고 솔직히 다 말하면 그건 바보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해야 하고 그게 싫으면 침묵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디테일 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게 없다. 장점이 단점이다. 당 대표, 국회의원 안 하면 (문 전 대표는) 진짜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당대표 하려면 좋은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된다. 좋은 사람이란 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만 좋은 사람이면서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제가 봤을 때는 대선 후보로서도 그런 부분이 더 필요하다.”
-문 전 대표 곁에서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본인이나 전병헌 최고위원 등은 컷오프 되고 반대로 당 내분을 부추겼던 인사들은 단수공천을 받고 생존 연장의 기회를 얻게 됐다
“이런 걸 보면서 정치란 참 비정한 심장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인가 회의도 있다. 정치 누군가의 피, 잔칫상 돼지머리 같은 제물을 필요로 하는가. 비정한 생각 많이 했다. 그런데 기왕에 나조차 조국산천에 뿌려서 조국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내 피를 전국에 뿌리고 다니겠다. 나는 지금 피를 흘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 단계 승화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상황이고 오늘은 두 군데 개소식 갔는데 처음에는 정치를 그만둘까 하면서도 굉장히 창피했다. 사람들 앞으로 어떻게 보지, 우리 아들 얼굴은 어떻게 보지.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쪽 팔렸다. 그런데 오늘은 내 심리 상태가 그게 아녔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보람을 느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가서 얼굴 비추고 사람들이 나를 보며 위안이 되고 위로 되는 것 많이 봤다. 그래서 보람 있었다, 오늘 하루 일정이. 오전에는 손 위원장과 망원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시장 상인이 날 보고 막 울더라고. 나도 순간 또 울었는데 손 위원장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더 할 일이 많구나 생각했다. 단번에 ‘정청래가 손혜원이다, 정청래 위하는 길이다’ 이게 단순히 될게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두가지 어려움 있다. 처음에는 그분들을 달래야 하고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가 헌법 기관 뽑는 거지 누군가의 대리인을 뽑는 게 아니다. 손혜원이 가치가 있다, 이걸 심어야 한다. 손혜원을 뽑았을 때도 민주주의 발전과 마포 발전에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상대 후보 쪽에서는 그 틈을 노려 공격할 것 같다
“대리인 뽑나, 어차피 갈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하겠지. 그런데 손 위원장이 항상 모순과 충돌이 있다. ‘아니다, 나 여기서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면 정청래 지지자가 (손 위워장을) 안 뽑는다. 그래서 이 걸 한방에 정리한 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말고 국회의원 두 명 뽑는 거다, 이렇게 정리하자.”
-본인의 정치적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혹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 목표가 바뀌거나 보완이 된 부분이 있나
“나는 2016년을 살지만 백 년 전과 백 년 후를 생각한다. 국회의원을 한다는 건 논두렁의 정기라도 타고 태어나야 한다. 한 사람이 천하의 우주고, 수 많은 천하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일이다.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예를 들면 19세기 말에는 동학이, 일제 치하에는 독립운동, 한국전쟁 때는 나라 지키는 게 시대정신이었다. 1950ㆍ60년대에는 서독으로 간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70ㆍ80년대는 민주화 운동, 90년대에는 시민운동, 21세기의 시대 정신은 한마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리고 진화한 것이 SNS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 통해서 대통령에 선출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텔레비전 토론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 보수정권과 진보개혁 정권은 무엇으로 대통령이 될 것인가. SNS를 가지고 돼야 한다. 이번 당 지도부 공천에서는 SNS를 애들이 노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특히 ‘SNS는 원래 그래’라는 반응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다. SNS도 국민이다. 단순히 온라인이 와글와글 한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동돼 SNS 반응이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온다. 이런 시대 정신을 몰각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개인의 노력으로 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것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다. 시운, 즉 시대정신과 맞는 운이 있어야 하지 개인의 목표로 삼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강물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다. 저는 의원 말고 그 이상의 개인적 목표는 상상할 수 있으나 내입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말로 한다고, 목표를 세운다고 이뤄질 목표 아니다. 시대 정신에 맞는 운이 따라야 하는 거고 내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 마음만 정갈하게 하고 있으면 된다.”
-지지자들, 특히 떠났던 분들 집으로 돌아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흔들렸던 지지자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집 떠난 주인은 집으로 속히 귀가조치 하라’ 이런 말을 하는데 그게 무리한 말인 것 스스로도 안다. 왜냐면 나도 그런 말을 100% 선뜻 내켜서 하는 것 아니고 그 말을 듣는 대상들도 제 말에 100% 동의한다 생각 안 한다. 어떻게 보면 억지 달램이고 억지 위로다. 그러나 억지가 됐든 순수한 마음의 발로든 나중에 따지자, 지금은 총선 전쟁터다.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것이 100% 호소력 있고 정확히 맞는 말이라 하는 것 아니고 ‘간절함’의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가 일본과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같이 손잡고 싸워야 하는 것처럼 지금은 어떻게 보면 우리 집 식구 아닌 것 사람들이 와서 집안문제를 왈가왈부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가족들이라도 먼저 단결해야 한다. 그런 간절함의 표현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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