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의 한 생명과학 연구소 앞에는 실험견 전문 구조 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관계자들이 매서운 추위도 잊은 채 개의 이동장 채비를 서둘렀다. 8개월간 실험에 사용돼온 비글종 실험견 두 마리를 인계 받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실험실 밖으로 나온 개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찬 공기, 소음, 외부 환경 등 모든 게 처음인 개들은 낯선 환경 탓인지 이동장 속을 돌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는 등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와 활동가들은 곧바로 인계병원으로 향해 두 마리의 건강검진을 마쳤다. 유 대표는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그동안 구조한 비글 가운데서도 가장 건강한 편에 속했다”고 전했다.
이번 실험견 구조는 연구소로부터 실험견 인계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은 지 3주 만에 이뤄진 것으로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정식 승인 절차를 거쳤다. 실험견을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다가도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도 수 차례였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그동안 실험에 동원됐다 구조된 실험견은 총 23마리가 됐다.
구조된 두 마리는 정밀한 실험을 위해 미국의 대형 실험견 생산업체인 ‘마셜 바이오 리소스’가 생산한 개들이라는 게 비글구조네트워크 측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외모나 유전적 측면에서 완벽한 품종인 ‘비글 스탠다드’에 가깝다. 두 마리 모두 1년 6개월 정도 된 수컷으로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유 대표는 “어떻게 이 두 마리를 활용 했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연구소 측도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신을 했고, 검사 결과 건강 상태가 좋은 것으로 봐선 대조군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험견 가운데서도 실험에 직접 동원되지 않는 대조군이나 실험에 사용되었어도 건강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개들이 있지만 아직까진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를 당하는 게 많은 게 현실이다(본보 1월 7일자 17면 ‘불법 번식장에서 실험실로… 벼랑 끝 강아지들’ 참조).
구조된 두 마리는 현재 충남 논산에 있는 비글구조네트워크의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보통 번식장이나 보호소에서 구조한 비글들의 경우 견종 특성상 활발함을 감추지 못하는 반면 두 마리는 쉼터에 와서도 내내 꼬리를 안으로 말아 넣고 움츠려 있다고 한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두 마리에게 새로운 공간, 소리 등에 적응하면서 사회화 교육을 하고, 일반 가정에서 적응 과정을 거친 후 새 가족을 찾아 줄 예정이다.
유 대표는 “이번 구조를 시작으로 밖으로 나와도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들의 경우 새 삶을 살 기회를 주는 사례가 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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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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