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는 없었다. 일명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망 사고의 피의자 허모(37)씨가 사고 발생 19일만인 지난 29일 오후 11시께 경찰에 자수했다. 의문의 뺑소니 사고로 묻힐 뻔한 사건은 인터넷 여론의 뜨거운 관심과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에 힘입어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이에 이번 사태를 발생부터 전개, 결정적 사건까지 한번에 알 수 있게 '기승전결'로 정리했다.
기: '크림빵 뺑소니' 범인을 찾습니다
지난 10일 새벽, 충북 청추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임신 7개월 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들고 귀가하던 20대 강모(29)시가 뺑소니 사고로 숨졌다. 결정적 증거가 없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언론 보도를 통해 강씨의 딱한 사연이 알려졌다. (▶기사보기)
강씨는 사범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교사를 꿈꿨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고, 자신은 생업을 위해 화물차 운전을 해왔다.
사고가 발생한 날도 늦은 밤까지 화물차 운전을 끝내고 아내가 좋아하던 빵을 들고 귀가하던 터였다.
강씨 아내는 사고 전 남편과 나눈 대화를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대신 크림빵을 샀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가진 것 없어도 우리 새별이(태명)에게 열심히 사는 훌룡한 부모가 되자고 약속했는데, 그게 마지막 전화였다." (▶기사보기)
승: 분노 또 분노… 네티즌 수사대 총출동!
강씨의 사연은 네티즌의 마음을 움직였다. '크림빵 아빠' 사건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네티즌들은 경찰에 조속한 범인 검거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자동차 동호회 등 유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에 찍힌 화면을 바탕으로 직접 용의자 찾기에 나섰다. 일명‘네티즌 수사대’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기사보기)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할 즈음,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건 한 시민의 '댓글'이었다. 사건 현장 인근 차량등록사업소에서 일하는 시 공무원이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우리도 도로변을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당시만 해도 용의차량을 특정할 수 없었던 경찰은 이 CCTV 파일을 가져가 분석한 끝에 차량을 ‘윈스톰’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 (▶기사보기)
전: 뺑소니범, 포위망 좁혀오자 ‘전전긍긍’
지난 29일 오후 11시8분께,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피의자 허모(37)씨가 청주 흥덕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허씨는 "사고 전날 회사 동료들과 술을 나눠 마셨고, 혼자 마신 술이 소주 4병 이상"이라며 "사람을 친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기사보기)
30일 현재 경찰은 허씨가 범행을 은폐할 의도가 있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허씨는 사고 이후 평소처럼 이틀에 한 번 꼴로 청주에 있는 집에 왔고, 평소처럼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왔다. 사건에 대한 인터넷 여론의 관심이 고조되던 지난 21일, 허씨는 윈스톰 차량을 충북 음성군에 있는 부모의 집에 가져다 두었다. 이후 범행 발각을 우려해 차량 손상 부분을 직접 손본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부품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는 네티즌은 한 인기 커뮤니티에 “며칠 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윈스톰 조수석 안개등과 커버를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점을 허씨가 범행사실을 은폐하려 한 정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허씨가 자수를 하게 된 배경도 관심을 모았다. 경찰은 허씨가 인터넷 여론의 관심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던 중, 차량이 특정되고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수를 결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허씨의 아내가 남편의 자수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보기)
결: ‘네티즌 수사대’ 어디까지 진화하나
이번 사건은 네티즌 수사대의 '집단지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된 사건으로 꼽힌다. 무차별적인 신상털기로 악명을 떨쳤던 네티즌들이 ‘제보’를 넘어 경찰과 ‘합동수사’까지 벌이며 활동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특히 네티즌들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고, 이후 경찰이 사고 해결을 위해 수사본부까지 설치해 범인 검거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기사보기)
그러나 네티즌 수사대의 무분별한 여론몰이가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네티즌 수사대의 '헛발질'이 무고한 시민을 괴롭히기도 했다. 사건 초기 경찰이 용의차량으로 BMW5시리즈를 특정한 후, 네티즌수사대는 번호판 판독에 나섰다. 이후 네티즌들이 용의자로 지목한 A씨는 악성댓글에 시달렸다.
이제 네티즌 수사대의 진화된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네티즌, 즉 시민들이 공동의 미션을 수행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건 긍정적인 힘이다. 그러나 여론몰이에 치중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고, 섣부른 추측으로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위험은 여전히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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