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공기 이런 것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미세먼지와 최악의 대기질은 매년 봄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는 듯하다. 최근 한 달 여 동안 내 코와 목구멍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마다 목이 부은 느낌과 두통이 따라오는데,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해 보면 매번 빨간색 세 자릿수가 보인다. 이런 괴로운 일상이 그저 공기 때문이라는 게 처참할 지경이다.
지난 금요일에 첫 회가 방영된 ‘윤식당(tvN)’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등장인물이고, 내용이고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인도네시아 해변 마을의 그 지상낙원 같은 풍광만이 들어왔다. 새파란 하늘과 모든 게 쨍하게 보이는, 바로 그 공기로 숨을 쉬는 것 같은 이상한 공감각적인 느낌이 아주 강렬했다.
‘윤식당’은 배우 윤여정과 이서진, 정유미가 인도네시아의 해변에 식당을 차리고 운영하는 리얼 예능이다. 첫 회에는 세 사람이 현지에 도착해서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연습해 보고, 서빙과 주방 등으로 역할을 나눠 식당 운영에 도전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담겼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 휴양지 섬의 높은 구름과 새파란 바다였다. 자동차는 아예 등장 하지도 않고, 주인공들은 식당과 집까지 마차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만 자꾸 들었다. ‘아, 저 곳의 공기는 얼마나 깨끗하고 신선할까.’ 넘치는 먹거리와 스노클링을 하는 관광객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지상낙원 같다.
최근 몇 년 간 방송에서 ‘먹방’ 열풍이 부는 것을 두고 이런 해석들이 나왔다.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누군가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또 우리가 현실에서 먹을 수 없는 비싼 음식, 정성이 많이 들어간 요리들을 TV로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윤식당’을 보면서 이건 ‘먹방’이 아니라 ‘숨방’이란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뿌옇고,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조차 열 수 없는 2017년 3월 서울의 현실. 그 답답함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수평선이며 푸른 섬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그 공기를 화면 속에서나마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나영석 PD는 정말 부지런하게 자신의 상표가 달린 예능을 내놓고 있다. 올해 벌써 ‘삼시세끼’와 ‘신혼일기’에 이어 ‘윤식당’이 나왔다. ‘윤식당’은 이서진, 윤여정, 신구 등 이미 과거 ‘나영석 예능’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이번에는 ‘이국적인 섬 풍광’과 ‘리얼 식당 경영’이라는 주제를 영리하게 덧붙였다.
과거 나영석 PD가 만들어낸 예능을 재미있게 봤던 이유는 그 안에 ‘힐링’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베테랑 할아버지 배우들의 배낭여행, 외딴 시골 마을에서 먹고 사는 일상 이야기 등은 밋밋한 듯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힐링과 재미를 줬다.
이번 ‘윤식당’에서 첫 회부터 느낀 힐링은 그저 ‘맑은 공기’ ‘또렷하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이걸 제작진이 미세먼지 가득한 시즌에 맞춰 방송이 나가도록 치밀하게 계산한 것인지 어떤 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먹방 열풍’ 안에서 재미를 느끼면서도 나름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짠한 느낌도 들었다면, ‘숨방’을 보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슬픈 느낌이 들었다. 이제 사람이 살 만한 공기와 날씨조차 TV 속에서 ‘구경’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슬픔. 그리고 공기라는 것이, 어릴 때까지만 해도 정말 당연하게 우리 곁에서 깨끗하게 존재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노력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이 지경이 돼 버릴 수 있다는 좌절감 같은 것도 같이 든다.
‘윤식당’의 ‘오너 셰프’ 윤여정이 첫 회에서 열흘간 머물 현지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꽃나무 앞으로 다가가는 장면이 나온다. 윤여정은 집 구경은 하지도 않고 꽃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냄새를 맡으면서 “나이 먹으면, 꽃만 눈에 들어와. 참 신기하지”라고 말한다.
나이 먹으면 꽃, 자연풍경, 그리고 공기까지 그동안 지천에 널린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눈에 자꾸 들어오나 보다. 깨끗한 공기가 참 눈물 나도록 그리운 계절이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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