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민승 기자가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습니다. 41회 육아일기부터는 직장인 아빠, ‘워킹대디’로 살면서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애 보는 것도 뭐 별 거 아니네!” “나 아무래도 이게 체질인 거 같아.”
육아휴직 전 쉬는 날에 아들을 잠깐씩 보면서 이 아빠는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기회 될 때마다 주변에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고, 육아휴직 선언을 했을 경우 충격 받을 수 있는 어른들에겐 그렇게 예방주사를 놓아드렸다.
물론 자신만만해 하는 이 아빠에게 우려의 시선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그게 아닐 텐데…’,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육아던데….’하지만 결론을 정해놓고 여론전을 펼치는 이 아빠에게 육아세계의 실상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강력하게 이야기해준 사람은 없었다. 육아휴직을 계획하고 있거나 막 휴직에 든 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정리했다.
1.‘방위육아’와 ‘현역육아’는 다르다
주말에 잠깐씩 육아를 도우면서 얻은 자신감으로 육아휴직에 뛰어들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출근 안 하는 휴일에 잠깐 애를 본다는 것과 주양육자로서 24시간, 그리고 연속해서 매일 아이를 보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육아도 육아지만 무수한 집안 일도 병행해야 하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충분히 인식하고 육아휴직에 들어야 덜 힘들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주양육자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돼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정설이다.
2. 라면 끓이는 실력만으론 곤란하다
육아휴직 아빠가 엄마랑 바통터치 하는 시기(아기 엄마가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12개월을 썼을 경우)는 대략 아이의 첫돌 즈음. 이 때 아기 엄마는 복직에 앞서 수유를 중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외부 음식으로 공급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아빠의 요리 실력이 이것 저것 뚝딱뚝딱 만들어 내놓을 정도가 된다면 큰 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아이 밥 먹이는 일은 고역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밥 때를 피하기 위해 외식을 떠올리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여행, 외출 등 불가피한 경우 몇 가지로 제한된다. 돌 갓 넘긴 아기가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나가서 먹을 경우 종업원과 주변 손님들에게 상당한 민폐도 유발해 외식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요리학원 수강도 고려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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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잘 노는 아빠가 육아도 잘한다
입담 좋고 음주가무에 능한, ‘잘 노는’ 아빠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아이 눈 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밖에 나가서도 주변 시선 아랑곳없이 아이만 보고 즐겁게 뛰놀 수 있는 자상한 아빠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과 잘 놀지 못하는 아빠도 육아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다. 이 아빠 경험상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육아의 8할은 해결됐다고 볼 수 있다. 웃음 소리 끊이지 않게 논 아이는, 땀이 나도록 논 아이는 잠을 오래 깊이 잔다. 자고 일어나서 밥도 잘 먹는다. 노는 듯 마는 듯 하면 잠투정이 많고 자더라도 선잠을 잔다. 어디 이 뿐인가 밥도 잘 안 먹게 되고, 이 때문에 배변도 시원하게 못 봐 짜증이 는다. 자고 먹는 일이 시원찮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 아빠 경우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종합한 결과 일반화 해도 무리가 없겠다 싶어 이렇게 적을 수 있게 됐다. 육아의 요체는 아이와 잘 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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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굴 두꺼우면 한결 쉬워지는 육아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상대가 있으면 그 일은 훨씬 수월해진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동네에(가까운 곳에) 육아휴직을 낸 아빠가 있으면 제일 좋고, 이게 안되면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기 엄마들과 친해져야 육아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육아 노하우, 정보 같은 것들도 동병상련의 사람들과 어울릴 때 많이 얻을 수 있다.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 아빠는 얼굴에 철판 깔 일이 부지기수로 많았던 사람. 단련돼 있던 만큼 다른 아기 엄마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휴직 아빠를 희귀동물 보듯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아기 엄마들은 아기 아빠를 경계했다. 남녀가 유별한,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엄마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려면, 수다로 스트레스 털어내려면, 육아우울증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얼굴에 철판 한번 깔아야 한다. 문화센터 같은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룹에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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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기적으로 ‘바람’을 피워라
직장생활 하는 ‘바깥사람’도 힘들겠지만 그보다 더 힘든 사람이(감히 이야기한다!) 집에서 애 보는 사람이다. 밖에서 밭을 매면 오줌이라도 마음대로 눌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는 있지만, 어린 자식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기본적인 일들이 쉬 허락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바쁘게 살던 아빠가 하루 아침에 전업주부가 됐다고 상상해보라.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태에서 어린 아이를 제대로 본다는 건 코미디다. 가까운 곳에 면대면으로 수다를 떨 사람이 있다면 큰 문제 없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아내가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취미활동 시간을 확보하는 게 좋다. 일주일에 한번 몇 시간씩이라도 육아에서 ‘완전해방’되는 시간을 만들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게 좋다. 이 아빠는 팔자에도 없는 합창단에 들어 노랠 불렀다. 그곳의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육아우울증도 비켜가고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셔야 보다 양질의 육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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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수인계 기간은 최소 한 달
경제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아내 복직 한 달 전에 휴직에 들어가는 게 좋다. 이른바 인수인계라는 것인데, 바깥의 그 어떤 것에 구속되지 않고 온전하게 가족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계획을 세운 아빠라면 주말에 하루 이틀씩 육아를 도맡아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사실상 아내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을 것은 없다. 이 기간에 여행도 좋고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것도 좋고 온 식구가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놓으면 훗날 여러모로 유익하다. 이 아빠의 경우 회사의 인사철에 맞춰 휴직에 들어서다 보니 이 기간이 두 달 반이나 됐다. 지금 생각하면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이후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데 이때 쌓은 추억들이 큰 힘이 됐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오는 시간들이다.
7. 최소한 1주일 단위 계획은 세워라
마지막 팁은 이 아빠의 후회에 기반한 조언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지나고 보면 밀려드는 후회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들을 1년 동안 무탈하게 봤다는 사실에 만족해야지, 하면서도 ‘조금 더 부지런히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릴 떠나지 않는다. 사실 주양육자로서 어린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날짜, 요일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짠 탓에 보통은 연속으로 먹이지 않던 카레를 어제 저녁에 먹였는지 오늘 아침에 먹였는지 헷갈려 연속으로 먹일 때도 있고, 1주일에 한번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 날짜를 놓쳐 뒷베란다가 난장판이 되기도 한다. ‘토일토일토토일’로 한 주가 휘리릭 지나가는 탓이다. 하고 싶은 일, 했으면 하는 일이 있으면 실행 계획표를 짜라. 스스로의 데드라인을 만들고, 매주 ‘1주일 뒤 복직한다’는 생각으로 육아에 임해라. 10년 같은 1년을 보낼 수 있다.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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