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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슈틸리케’, 中 축구굴기에 굴욕감을 안기다

입력
2015.11.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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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축구

월드컵 2차 예선에서 中에 앞선 조 2위

최종예선行도 가시권…“새 역사 쓴다”

김판곤 홍콩축구대표팀 감독. 홍콩축구협회제공
김판곤 홍콩축구대표팀 감독. 홍콩축구협회제공

“벅찼습니다.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요….”

17일 홍콩 몽콕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C조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이끈 김판곤(46)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은 19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그 날의 감흥을 이같이 전했다. 그의 목소리엔 기쁨과 함께 옅은 떨림도 묻어났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던 그는 “빨리 평정심을 찾고 내년을 준비하겠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이어갔다.

● 대륙을 잠재운 비주류 한국 감독

국내 무대에서 비주류의 설움을 겪었던 그는 지금 홍콩 내에서 울리 슈틸리케(61)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이끄는 홍콩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중국에 두 번 연속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비겼을 때야 ‘어쩌다 한 번이겠지’싶었던 의심의 시선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홍콩 축구팬들은 이제 700만 인구의 홍콩이 14억 인구의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데 대해 상당한 긍지를 느끼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의 민주화운동 진압을 계기로 반중(反中) 정서가 크게 자리잡고 있던 터라 그 날의 쾌감은 더 컸다.

18일자 홍콩 주요 일간지에서는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 축구대표팀 소식을 대서특필 했다. 독자제공
18일자 홍콩 주요 일간지에서는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 축구대표팀 소식을 대서특필 했다. 독자제공

반대로 중국의 굴욕감은 상당하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월 ‘축구 개혁 종합방안’을 내놓는 등 ‘축구굴기(蹴球?起?축구를 일으켜 세운다)’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왔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은커녕 최종 예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2차 예선 막판에 접어든 현재 홍콩은 승점 14점으로 중국(승점 11)에 앞서 있다. 조 1위인 카타르(승점 18)와의 승점차가 커 최종 예선 자력 진출은 힘든 상황이지만 8개 조의 2위팀 중 성적이 좋은 4팀에게 최종 예선 진출자격이 주어지기에 조 2위 수성에 사활을 걸 태세다.

● “홍콩 잔류에 무게…일 내 보겠다”

올해를 끝으로 홍콩축구협회와 계약이 끝나는 그는 벌써부터 홍콩축구협회 측으로부터 잔류해 달라는 뜻을 전달받은 상태다. 지난 8월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기사보기)에서 국내 복귀 가능성도 열어뒀던 그였지만 “나를 존중해주고 신뢰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워낙 홍콩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잔류 쪽에 무게를 뒀다.

홍콩은 내년 3월 24일 카타르와 2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중국은 몰디브, 카타르와 두 경기를 남겨 놓은 상태다. 중국이 약체 몰디브에 낙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카타르전에 모든 걸 쏟겠다는 게 김 감독의 각오다.

“홍콩대표팀이 단기 토너먼트가 아닌, 긴 예선을 이렇게 잘 치른 건 정말 오랜만”이라며 선수들에 아낌 없는 칭찬을 전한 김 감독은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 만큼 최종 예선 진출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홍콩 내의 김판곤 감독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17일 중국전을 앞두고는 '김판곤 탈'까지 등장했다. 독자제공
홍콩 내의 김판곤 감독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17일 중국전을 앞두고는 '김판곤 탈'까지 등장했다.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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