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축구
월드컵 2차 예선에서 中에 앞선 조 2위
최종예선行도 가시권…“새 역사 쓴다”
“벅찼습니다.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요….”
17일 홍콩 몽콕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C조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이끈 김판곤(46)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은 19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그 날의 감흥을 이같이 전했다. 그의 목소리엔 기쁨과 함께 옅은 떨림도 묻어났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던 그는 “빨리 평정심을 찾고 내년을 준비하겠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이어갔다.
● 대륙을 잠재운 비주류 한국 감독
국내 무대에서 비주류의 설움을 겪었던 그는 지금 홍콩 내에서 울리 슈틸리케(61)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이끄는 홍콩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중국에 두 번 연속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비겼을 때야 ‘어쩌다 한 번이겠지’싶었던 의심의 시선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홍콩 축구팬들은 이제 700만 인구의 홍콩이 14억 인구의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데 대해 상당한 긍지를 느끼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의 민주화운동 진압을 계기로 반중(反中) 정서가 크게 자리잡고 있던 터라 그 날의 쾌감은 더 컸다.
반대로 중국의 굴욕감은 상당하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월 ‘축구 개혁 종합방안’을 내놓는 등 ‘축구굴기(蹴球?起?축구를 일으켜 세운다)’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왔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은커녕 최종 예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2차 예선 막판에 접어든 현재 홍콩은 승점 14점으로 중국(승점 11)에 앞서 있다. 조 1위인 카타르(승점 18)와의 승점차가 커 최종 예선 자력 진출은 힘든 상황이지만 8개 조의 2위팀 중 성적이 좋은 4팀에게 최종 예선 진출자격이 주어지기에 조 2위 수성에 사활을 걸 태세다.
● “홍콩 잔류에 무게…일 내 보겠다”
올해를 끝으로 홍콩축구협회와 계약이 끝나는 그는 벌써부터 홍콩축구협회 측으로부터 잔류해 달라는 뜻을 전달받은 상태다. 지난 8월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기사보기)에서 국내 복귀 가능성도 열어뒀던 그였지만 “나를 존중해주고 신뢰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워낙 홍콩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잔류 쪽에 무게를 뒀다.
홍콩은 내년 3월 24일 카타르와 2차 예선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중국은 몰디브, 카타르와 두 경기를 남겨 놓은 상태다. 중국이 약체 몰디브에 낙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카타르전에 모든 걸 쏟겠다는 게 김 감독의 각오다.
“홍콩대표팀이 단기 토너먼트가 아닌, 긴 예선을 이렇게 잘 치른 건 정말 오랜만”이라며 선수들에 아낌 없는 칭찬을 전한 김 감독은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 만큼 최종 예선 진출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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