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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천재의 눈물 “아빠, 내가 행복한 건 안 보여?”

입력
2017.05.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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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발굴단' 101화의 한 장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참가한 영재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SBS 제공
'영재발굴단' 101화의 한 장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참가한 영재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SBS 제공

어린이 날이 포함된, 극한 체력전을 치러낸 ‘퐁당퐁당 연휴’가 끝났다.

‘어린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이해할 것이다. 평소에도 가정 내 권력 서열 1위에 있는 이 녀석들에게 어린이 날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실컷 더 하게 하느라 늙은 엄마 아빠들에겐 실로 고난의 주간이라는 걸.

바로 그 어린이 날 아침이었다. 평소엔 잘 안 보는 ‘영재발굴단(SBS)’ 100회 특집 장기 프로젝트 어린이 날 특집 재방송을 우연히 본 것은. 열 살이 갓 넘은 소년들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에 도전하는 이야기였고, 프로그램은 최종후보 총 7명의 아이들이 발레와 탭댄스, 노래, 연기 등을 배우는 1년 간의 모습을 장기간 담아냈다.

나는 뒤늦게 이 프로그램을 보고(본 방송은 이미 지난 3월에 했다) 하필 어린이 날 아침부터 엉엉 울고 말았다.

7명의 아이들은 10~12세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른스러웠고 진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되바라진 느낌도 전혀 없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춤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실수를 하면 곧바로 약해지고 오디션 때 잔뜩 긴장한 모습은 또 너무나 아이 다워서 예뻤다.

7명의 아이 중에 나를 울린 주인공은 민철이라는 아이였다. 춤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 아이는 긴 팔다리와 아름다운 몸선을 가졌고, 진지하게 춤을 추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민철이 아버지는 아들이 장래희망으로 댄서가 되고 싶어하는 것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남자가 춤을 춰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말하는 아버지에게 민철이는 눈물 맺힌 눈으로 진지하게 항변한다. “아빠 눈에는 내 행복한 모습은 안 보여?”

순간 나까지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중학생이 저렇게 진지하게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놀라워서였다.

결국 민철이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라서’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빌리는 12세 이하, 키 150센티미터 이하의 소년이어야 하는데 민철이는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더 자랄 수 있고 변성기가 올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철이가 1년간 진지하게 꿈에 도전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탈락 소식을 들은 아들에게 “발은 괜찮냐. 무용하는 애가 발 아프면 안 된다”고 슬쩍 말을 던진다. 아마 그 아버지는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의 진지한 한 마디에 나 같은 시청자 보다 더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모른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 분야에서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영재’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영재’라는 게 단순히 어떤 것을 잘 한다는 뜻만은 아닌 것 같다.

빌리에 도전했던 일곱 명의 아이들처럼 아주 어린 나이인데도 ‘내가 이걸 꼭 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 재능이 있고, 이걸 할 때 신 나고 가슴이 뛴다’는 걸 찾아낸 아이들이야 말로 진짜 대단한 영재다. 어른이 돼서도, 아니,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말이다.

빌리 역에 최종합격한 네 명 중 한 명인 현서는 또 다른 케이스다. 현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춤을 추고 싶다는 아들의 꿈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도와준다. 특히 춤 하나하나를 봐 주고 박수 쳐주는 열혈 아버지의 응원을 받는 현서는 밝고, 반듯하고, 구김살이라곤 전혀 없이 예쁘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위축되지 않고 늘 환하게 웃고 있다. 춤이나 노래, 연기 실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데도 최종 빌리 역에 낙점된 건 바로 이런 힘이 아니었을까.

어린 천재들, 특히나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어린 천재들의 퍼포먼스를 보면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곤 한다. 그건 그 어린 아이의 춤이나 노래, 혹은 연주 안에서 ‘신의 존재’가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신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아름다운 재능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걸 발견하고, 응원하고, 발전시키는 건 부모다.

나는 어떤 부모일까, 하고 문득 생각해 봤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엔 늘 짜증을 내고, 퇴근 후 저녁 때 놀아 달라는 아이에게는 핸드폰을 쥐여주고 누워 버리곤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 애는 어린이 날 선물로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 달라며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주 평범한 부모고 너도 아주 평범한 아이였지. 그랬었지.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 줘서 눈물 나게 고맙다. ‘영재’가 아니면 어떠리. 영재는 TV 안에서 구경 하면 그걸로 됐다고.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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