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가 아니다. 마음 편히 자전거 탈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관련기사 : ‘자전거, 도대체 어디서 타야 하나’). 서울에서 자전거가 ‘대세’인 공간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한강변이나 대형 공원뿐이다. 이곳을 벗어난 자전거는 환영 받지 못하는 ‘소수자’다.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도로에서는 거칠게 달리는 차를 피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자전거를 왜 도로에서 타냐는 인식을 가진 운전자가 많다. 자전거와 동선이 겹칠 수 밖에 없는 버스와 택시는 거침없이 몰아치며 위협한다. 자전거 전용차로는 불법으로 세워진 차들로 막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서는 걷는 이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열악한 자전거 환경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공공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일명 ‘따릉이’. 서울시는 지난 달 15일 4대문 안, 여의도, 상암, 신촌, 성수 5개 권역에 28억원의 예산을 들여 자전거 대여소 160여개를 설치하고 공공자전거 1,200대를 배치해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홈페이지 (‘서울자전거 따릉이’바로가기)에서 회원가입 후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가까운 대여소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연간 이용이 3만원, 30일 5,000원, 1일(기본 1시간, 24시간 연장) 1,000원 등 저렴한 편이다. 처음 빌린 곳과 다른 곳으로 반납할 수 있어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대당 75만원(서비스 단말기 포함)인 자전거는 평지를 주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능으로 바구니도 달려 있어 간단한 짐을 실을 수도 있다.
일단 운영 초기 따릉이에 대한 시민 반응은 좋은 편이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관계자에 따르면 시범 운행을 시작한 9월 17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2만 5,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대여건수는 4만 6,204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문제는 안전이다. 자전거를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도로가 서울 시내에 얼마나 될까. 교통량이 많고 주요 시설이 밀집한 4대문 안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이용하기 어렵다. 시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시작하며 안전확보의 일환으로 ‘자전거 우선도로’를 확대했다.
자전거 우선도로는 지난 해 4월부터 시행된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입한 제도로 자동차 통행량이 적은 도로에서 자전거와 다른 차가 상호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에 노면표시로 설치한 자전거도로를 말한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분리대나 경계석 등을 이용해 구분한 자전거 전용도로, 보행자와 함께 다닐 수 있는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 차도 일정 부분을 자전거만 통행하도록 차로를 구분한 자전거 전용차로와 달리 차와 함께 이용하는 도로다.
서울역에서 광화문 사이를 따릉이로 5km 가량 이동하면서 새로 설치된 자전거 우선도로를 살펴봤다. 노면에 자전거 표시를 제외하면 설치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자전거 우선도로가 시작되는 곳부터 택시 여러 대가 불법정차를 하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으로 진입을 앞둔 버스들이 굉음을 울리며 자전거를 추월했고 수 차례 경적을 울리는 버스도 있었다.
숭례문 오거리에서는 맨 우측 5차로에 있던 자전거 표시가 4차로, 3차로로 옮겨 가며 자전거 통행을 유도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대로를 가로지르라는 말이다. 표시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뒤쪽에서 이동하는 차량을 반드시 살펴야 했다. 차량 이동은 빠르게 이어졌고 흐름이 끊길 때까지 결국 도로변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숭례문 오거리를 지나 시청으로 향하는 길은 관광버스 수십 대가 자전거 우선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상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경찰버스도 여러 대 지나야 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 때에는 우회전 하는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위협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우선’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전거의 안전을 우선하고 배려하는 자동차 운전자는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 우선도로라는 단어 자체를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운전자가 많았다. 서울에서 12년 째 모범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김모(58)기사는 “자전거 우선도로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 운수업 종사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오죽하겠냐”라며 “길바닥 표시 하나만으로 안전도가 높아지진 않으니 차도와 분리된 길에서만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년째 자전거 출근을 하며 숭례문과 시청을 지나는 직장인 한재영(35)씨는 “도로에 자전거 표시가 늘어난 것만으로도 반갑다”며 “자전거 우선도로에선 자전거의 안전이 먼저라는 인식을 차량 운전자에게 심어주기 위해 홍보와 단속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역 인근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반납 중이던 한 시민은 “시청 부근은 자전거 우선도로와 상관 없이 빨리 달리는 차가 많아 이동 수단으로 따릉이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 같다”며 “자전거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하고 이용해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 시민은 “보행자들 눈치 보며 인도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따릉이의 성공 여부는 자전거를 타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또 교통약자인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는 도로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2010년 여의도와 상암에 설치했다 전량 철거한 공공자전거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