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해체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이 '종북', 즉 북한의 지도이념을 추종했다고 봤다. 국민의 선거가 아닌 국가기관이 정당의 존폐를 결정한 만큼 파장은 크다. 연말 정국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이 펼쳐지게 됐다. 이번 사태를 발생부터 전개, 결정적 사건까지 한번에 알 수 있게 '기승전결'로 정리했다.
기: 박근혜 정부, 정당을 법정에 세우다
1. 해외에서 전자결재로 승인한 ‘통진당 심판’
2013년 11월5일, 박근혜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정부는 이날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의결했는데, 당시 영국을 방문 중이었던 박근혜 대통령 이를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기사보기 )
2. 해산 청구 이유는?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통합진보당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세력인 RO(혁명조직)의 내란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기사보기)
승: 부정경선 그리고 이석기가 몰고 온 먹구름
1. 창당 한달 만에 쪼개진 당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잘 이해하려면, 정당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1년 12월5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 등 진보 진영의 단일화로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졌다. 19대 총선에서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의석인 13석을 얻으며 선전했지만, 총선 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졌다. 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당권파인 구 민주노동당 민족해방(NL)계열과 비당권파인 민중민주(PD)계열간 해묵은 갈등이 폭발했다. (▶기사보기)
2. '종북' 논란 왜 시작됐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이후 NL계열이 북한식 사고에 젖어 정치 활동을 계속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여기에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말이 '종북'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의원은 당시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는데, 부정경선 파문의 당사자로 대북관에 의문이 제기되던 터여서 논란이 커졌다.(▶기사보기 )
3. 33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2013년 8월28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후 33년 만에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됐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과 당 간부 사무실 압수수색을 벌였고, 이 의원 등 130여명이 지하혁명조직 RO를 결성, 전시 남한체제 전복을 위해 인명살상과 후방교란을 모의했다고 밝혔다. (▶기사보기)
4. 국정원 대선개입 덮은 내란죄?
국정원은 ‘내란음모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기사보기)'내란음모죄' 적용이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국정원이 대선개입 논란에서 국면전환을 꾀하기 위해 무리를 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검찰은 내란음모·선동 및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등 혐의로 이 의원을 기소했다. 이후 국회에선 이 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됐다. (▶기사보기)
5. '이석기 구하기' 총력전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의원 구하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석기 의원의 무죄 입증을 위한 법정투쟁과 대국민 선전전을 동시에 펼쳤다. 이 의원의 변호를 맡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총기탈취는 한두 명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는 군색한 변명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과 국민 여론은 한발 더 멀어졌다. (▶기사보기 )
전: 정부의 총공세… 전전긍긍 통합진보당
1. "헌법 부정하는 당과 함께 못해"
이석기 의원이 구속된 후 정치권은 한동안 '종북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헌법을 부정하는 당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통합진보당은 벼랑으로 내몰렸다. 존립 가치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던 2013년 11월5일,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존폐를 헌재의 손으로 넘겼다. (▶기사보기)
2. 황교안 vs 이정희 설전
통합진보당의 운명을 건 ‘최종 변론장’에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맞붙었다. 각각 행정부처 수장과 야당의 수장, 동시에 법률가인 두 사람의 공개 변론은 이번 사태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을 내부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다. 정당해산이라는 수술을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 된다.”(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치적 의견의 차이를 적대행위로 몰아붙이는 행위 자체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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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란음모사건' 엇갈린 판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심리가 계속되는 동안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두 번의 판결이 있었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인 수원지방법원은 이 의원의 내란음모·선동·국보법 위반을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지난 8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내란음모혐의는 무죄, 내란선동혐의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될 만큼 구체적인 합의와 준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사보기)
4. '이석기 구하기'가 발목 잡았나
이석기 의원이 항소심에서 감형 받은 이후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이 제 발등을 찍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의원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5·12 화합은 통합진보당의 정세강연회로 피고인 이석기 강연의 취지는 북한의 공격에 동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전평화활동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의원 측이 내란음모 혐의를 벗기 위해 5·12 화합을 정당 행사라고 얘기하면서 '당과는 무관한 일탈 행위'로 빠져나갈 수 없게 돼 정당해산심판청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 기사보기)
5. 갑작스러운 선고 결정… 왜?
지난 17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운명을 19일 결정한다고 밝혔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을 1년도 안돼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현 정권의 정치적 고비마다 공안 사건이 전면에 등장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었다. (▶기사보기 )
결 : 통진당 해산‘블랙홀’, 파문은 어디까지
1.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19일, 통합진보당이 해산이 결정됐다.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김미애, 김재연, 오병균, 이상규 의원 등의 의원직 상실도 확정됐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서 모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기사보기)
2. 헌재 결정에 반대 목소리도
헌재의 결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독일에서 있었던 두 건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 이후 60여년간 선진국에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한 예는 없다. 통합진보당의 이념엔 동의하지 않지만, 정당 해산은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민주주의 가치를 위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사보기)
3. 연말 정국, 이념 대결 블랙홀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후폭풍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통진당 부정경선 파문,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이념 대결'로 흐르는 데 대한 피로감도 크다. (▶기사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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