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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 변천사' 60년대 설탕·80년대 갈비... 올해 인기는?

입력
2022.09.09 13:00
수정
2022.09.0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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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설탕 80년대 정육 세트 인기
명절 대세 선물 상품권 본격 등장은 90년대
코로나19 후에는 비대면 선물 인기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한 시민이 추석 선물세트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한 시민이 추석 선물세트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 고공행진과 경기침체 우려로 증권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전인 작년 이맘때, 추석 선물로 주식상품권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증시 호황에 증권사들이 앞다퉈 온라인 쇼핑몰 등에 금융상품권을 출시했고, 추석을 앞두고 관련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열면서 새 명절 선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1년 만에 코스피 지수가 3분의 2 토막이 나면서 올 추석에는 주식상품권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명절 선물은 시대를 반영한다. 1950년 6.25 전쟁 직후에는 주로 '먹을 것'을 나눴고, 산업화 진전으로 추석 선물이 풍습이 된 1970년대에는 화장품, 속옷, 스타킹 등 식생활과 무관한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시대별 인기 추석 선물을 정리했다.

50년대 고관댁 추석 선물은 '과일상자'

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 선물세트를 고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과일 선물세트를 고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1950년대 추석 선물에는 농산물이 많았다. 당시 추석 선물 관련 기사는 정부가 고아원 등에 지원한 쌀, 고관대작에 배달된 먹을거리가 주를 이뤘다. 6‧25 전쟁 중인 1952년 10월 7일 조선일보는 '부산에서 추석을 맞은 세궁민에게 정부방출미를 특배한 바 있는데, 부산 수영동에서는 세궁민들에게 한 톨의 쌀 배급도 없고 동회 간부, 통반장들끼리만 분배 착복했다 하여 동민의 비난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과일은 꽤 고급 선물 축에 낀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0월 4일자 경향신문은 '도매청과시장에 쌓인 사과 등 실과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그 가격은 평시의 배를 받았는데 이 과일상자의 태반은 고관댁과 권력층 저택에 운반돼갔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쇼핑이 일반화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추석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인기 있는 명절 선물의 종류, 가격대로 당시 경기는 물론 시대상도 유추해 볼 수 있다. 1995년 추석을 앞두고 신세계백화점은 1965년부터 30년 동안 인기 있던 명절 선물 종류와 가격, 경향을 조사해 '광복 50년 추석선물 50년'이란 책자를 냈다.

60년대 최고 인기 선물은 6㎏ 설탕

1960~1970년대 인기 선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미료, 설탕, 내복, 성냥, 세제.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0~1970년대 인기 선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미료, 설탕, 내복, 성냥, 세제.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책에 따르면 1965년 최고 인기 선물은 6㎏짜리 설탕. 값은 780원이었다.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 가공식품이 인기를 끌어서 50개들이 라면 상자(500원), 30개들이 세탁비누 세트(1,000원)도 잘 팔렸다. 당시 고급 선물은 12병들이 맥주 상자(2,000원), 최고급 선물은 양복지(양복 지을 옷감‧5,000원)였다.

이 백화점이 1970년대 초반 꼽은 '최고 인기 추석 선물'은 24병들이 콜라 상자(910원)다. 18개가 든 밀감 상자(1,800원), 인스턴트커피 세트(680~1,290원)도 인기 품목에 등장했다. 1950년대 '고급 선물'이었다던 계란은 이때도 인기였는데 당시 120개들이 선물세트(2,000원)가 잘 팔렸다고 하니, 지금과 다른 '차례상 스케일'을 짐작게 한다.

일부 사람들에게 한정됐던 추석 선물 풍습이 대중으로 퍼진 게 이때부터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선물의 종류가 크게 다양해져, 백화점 카탈로그에 등장한 추석 선물은 1960년대 100여 종에서 이 시기 약 1,000여 종으로 늘었다. 화장품, 스타킹, 속옷, 양산, 라디오 등 식생활과 무관한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1970년대 말에는 흑백 TV, 보온밥솥, 가스레인지 등 가전제품이 인기 선물로 부상했다.

80년대 갈비 세트·90년대 상품권 등장

1995년 9월 11일 추석을 앞두고 한 백화점에서 직원들이 갈비 세트를 예약 판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9월 11일 추석을 앞두고 한 백화점에서 직원들이 갈비 세트를 예약 판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연 1980년대는 추석 선물의 고급화 시기다. 31만6,000원짜리 양주와 22만3,000원짜리 화장품 세트, 16만5,000원짜리 넥타이가 추석 선물로 나왔고 갈비, 과일 등 '고급 식품 세트'가 등장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도 이 즈음이다.

현물이 절대적이었던 시장은 1990년대 들어 상품권이 인기를 끌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백화점‧구두상품권이 국내 처음 등장한 건 1971년 12월이었지만, 상품권 남발로 물자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1974년 8월 상품권 발행을 중단했다. 1994년 부활한 상품권은 대번에 가장 선호하는 선물 1위에 올랐다. 1996년 9월 2일자 한국일보는 '추석에 주고 싶은 선물‧받고 싶은 선물 1위에 상품권이 꼽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한 백화점이 321명 주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 설문에서 추석에 받고 싶은 선물은 상품권(34%), 갈비 세트(19%), 멸치 세트(17%), 의류(13%), 과일(11%) 순이었다. 주고 싶은 선물은 상품권(29%), 주류(25%), 갈비 세트(20%), 건강식품(14%), 의류(10%) 순이었다.

훈훈한 추석 분위기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급변한다. 불황과 구조조정 한파, 국산품 애용 열기가 추석 선물에도 반영됐다. 1998년 9월 25일자 한국일보는 '각 백화점마다 추석 선물세트에 양주를 퇴출시키고 전통 민속주를 크게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백화점들은 수입 양주 세트 매출액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억 원에서 98년 5억 원으로 줄고, 대신 민속주는 3억 원에서 4억 원으로 늘 것으로 예측했다.

김영란법·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가성비 선물이 대세

추석 명절을 열흘 앞둔 2019년 10월 3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명절 선물 및 택배 물품 분류 도중 목을 축이고 있다. 뉴스1

추석 명절을 열흘 앞둔 2019년 10월 3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명절 선물 및 택배 물품 분류 도중 목을 축이고 있다. 뉴스1

2000년대부터는 추석 선물로 효도 성형, 기프티콘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다. 웰빙 열풍으로 2003년 올리브유, 2011년 슈퍼푸드, 2014년 연어캔 선물세트들이 새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대중화되면서 선물이 간소화하는 추세를 띄었다. 4인 가족이 먹을 대용량 선물 대신 소포장 선물, 추석 간편상 등의 판매가 높았다.

2016년 9월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서 추석 선물에 또 한 번 판도가 바뀐다. 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추석에 5만 원 이하로 맞춘 선물세트들이 백화점 매대를 장식했다. 2018년 김영란 법 시행령 개정으로 선물 금액 상한선이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라가면서 한우, 사과, 배, 굴비가 인기를 회복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그해 한우 세트의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60.6% 올랐고, 굴비도 51.5%나 더 팔렸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배송 방식이 명절 선물의 대세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15일자 한국일보는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코로나19 이후 2021년 추석까지 사전예약을 통해 비대면으로 전한 명절 선물 매출액을 조사했는데, 3사 모두 "약 3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올 추석 비대면 선물은 이보다 늘 전망이다. 이마트가 올해 7월 21일부터 8월 29일까지 40일간 추석 선물세트 예약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이 작년 추석 대비 약 49.5% 신장했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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