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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수능부터 주관식으로 바꿔라

입력
2023.01.25 04:40
수정
2023.01.28 08:0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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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상

편집자주

2023년 대한민국 국력은 교차점에 있다. 과거의 성취를 모은 오늘의 국력은 단군 이래 정점에 섰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인구통계, 사회갈등 등 현재의 변화를 추적하면 미래는 암담하다. 성취를 지키고 밝은 미래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원로 5인의 냉정하지만 따뜻한 조언을 5회에 나눠 소개한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선풍도골(仙風道骨). 김도연(71)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첫인상이었다. 190㎝ 전후의 큰 키, 호리호리한 몸매, 옅은 미소가 늘 배어 있는 표정. 슈트가 아니라 도포를 걸쳤다면 속세가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선비 풍모였다. 경기고 2학년 때 문과에서 이과로 바꿔 공학도(서울대 재료공학과)가 되고, 큰 키를 이용한 탁월한 조정(漕艇) 능력으로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내고, 학자(서울대 공대학장)에서 교육행정가로 변신한 폭넓은 삶의 궤적이 느껴졌다.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균일화된 물건을 대량 생산하던 시기에 맞춰진 우리 교육을 21세기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의욕만 앞선 개혁이 좌초됐던 과거 사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속도 조절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난 16일 한국일보에서 이뤄진 김 전 장관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_한국 교육의 지난 성과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게 사람이고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 됐다. 미래를 준비하는 첫 번째가 교육이다. 교육개혁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가 굉장히 교육을 잘못해온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결과가 보여준다. 한국처럼 반세기 동안 기적처럼 성장한 나라가 없다. 교육 잘 시켰고, 인재를 잘 키워낸 거다. 산업사회에 맞는 인재를 잘 키워낸 덕분에 서양에선 200~300년 걸린 산업화를 50년 만에 이뤘다. 핵심은 미래를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며 우리가 갖게 된 큰 문제가 있다. 나처럼 1950~1960년대 초등학교 다닌 사람들은 후진국 마인드이고, 40~50대는 중진국 마인드이고 요즘 10~20대는 선진국이다. 후진국 노인들에게 배운 중진국 어른들이 선진국 애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명전환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만큼 교육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_교육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 외에도 우리 교육에는 이념 문제까지 들어와 있다. 실타래가 엉켜있는 듯싶다. 그래도 첫 매듭은 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게 평가이기 때문이다.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으로 사람이 길러진다. 우리는 초중등 12년 교육이 대입에 맞춰지고, 그 정점이 수능이다. 12년 동안 뭘 해도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 간다. 수능을 혁신하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 수능은 산업문명 시대의 굉장히 효율적인 제도이다. 50만 명을 획일적으로 줄 세우는 데 효과적이다. 이제는 그게 진짜 아닌 것 같다. 학생이 다양해지고, 개인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에는 안 어울린다."

_수능을 폐지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 하나.

"수능은 여러 문제점이 있다. 특히 수능 목적이 변별력이란 점이다. 1등부터 50만 등까지 줄을 세운다. 그래서 문제를 꼬고 꼬고, 또 꼬았다. 창의력이나 이해력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오리무중 같은 곳에 들어가서 정답을 찾는다. 더 큰 문제는 세상 일을 정답과 오답으로 구분하려는 방식이다. 세상 일은 7점짜리 답도 있고, 3점짜리 답도 있는데 이런 접근은 잘못이다. 우리 정치가 이리 된 것도 수능 같은 사고방식이 문제가 된 것 같다. 내가 고른 답이 아니면 오답이고, 그것은 0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큰 문제다. 물론 중요한 제도를 하루아침에 고치는 건 무리다. 이걸로 이익을 봤던 사람, 없어지면 손해 보는 사람의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10년 정도 시간을 두고, 가능한 한 주관식과 서술식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주관식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고 반박하지만 외국에선 다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는 그런 평가에 AI가 상당한 도움을 줄 거다. 그럼 사람들도 신뢰를 할 것이다. 예컨대 10년 계획이라면 1년에 5%씩 주관식과 서술식을 넣어서 10년 후에 50% 정도 주관식과 서술식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

_입시개혁 다음은 대학교육인가. 평소 총장직선제와 임기제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대학 개혁에서는 총장직선제가 중요하다. 1987년 이른바 민주화되면서 대학이 제일 먼저 선택한 제도가 1인 1표에 의한 총장직선제다. 대학은 1인 1표 민주주의와는 멀어야 한다. 무차별 평등주의이기 때문이다. 1인 1표로 하면 포퓰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학교수는 이성적이니까’ 괜찮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있을 수 없다. 대학 경쟁력은 프로축구팀과 비교해야 한다. 축구팀 감독을 선수끼리 뽑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선수 연봉은 똑같고, 5년 감독하는 동안 어떤 선수도 퇴출시키지 않는다. 동네 축구팀 운영방식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경쟁하려면 몸값 비싼 선수를 사 오기도, 혹은 못하면 내보내기도 해야 한다. 직선제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_직선제 줄이려는 시도는 없었나.

“1987년 이후 직선제를 20년가량 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 상당히 없앴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완전히 돌아서 지금은 모두 직선제를 하고 있다. 직선제를 해도 좋은데, 총장 임기는 왜 정해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제도는 일본에서 굉장히 많이 받아온 것이다. 경성제국대학이 있었고, 그 시스템을 계속 받아온 거여서 총장 임기 4년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었다. 그런데 일본도 5, 6년 전에 임기를 6년으로 늘렸다. 왜 법으로 정하나. 왜 대학마다 자율성을 안 주나.”

_우수 사례로 소개할 만한 외국 대학이 있다면.

“물론 한 대학의 사례가 다른 모든 대학에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최근의 예를 들자면 미국 하버드 대학의 52세 여성 총장이자, 첫 흑인 총장인 클로딘 게이 총장이다. 이분은 아이티 이민자로 하버드가 아닌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직선제라면 100% 총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주목할 건 하버드 386년 역사에서 게이 총장은 30번째인데, 연륜이 하버드의 5분의 1(77년)인 서울대에서 올해 2월 취임할 분은 28대 총장이라는 점이다.”

김도연 전 장관은 수능개편과 5.5세 취학 등 교육개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의 연속성이 이뤄지도록 국민적 합의와 적절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김도연 전 장관은 수능개편과 5.5세 취학 등 교육개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의 연속성이 이뤄지도록 국민적 합의와 적절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_윤석열 정부에서 초중등 교육 예산을 대학으로 옮기는 조치가 이뤄졌다. 그 방향이 맞는지.

“그건 확실하게 맞다. 초중등 부문에서는 1970년 대비 학교가 4,000개 없어졌다. 초중등 교육 여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굉장히 상위권이다. 학생 1인당 예산지출이 OECD 평균의 1.5배에 달하는데, 대학은 60%에 불과하다."

_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높은 불신을 걱정하신 적이 있다.

“대학은 인재 배출, 사회는 대학 지원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학에 대한 불신으로 지원이 끊겼다. 그래서 인재 배출이 안 된다. 진짜 큰일이다. 그렇다면 왜 사회가 대학을 밀어주지 않나. 바로 불신이다. 사립대학을 키워드로 포털에서 검색하면 ‘비리’라는 단어가 붙어 나온다. 대학이 잘못한 게 많고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요한데, 나는 그게 ‘교수 정년보장’의 포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교수는 대개 30대 초반에 들어와서 10년 근무하면 정교수가 되고 정년 보장을 받는다. 그리고 99.9%가 65세 정년까지 간다. 그게 굉장히 문제고, 우리나라에 정년제도가 굉장히 잘못 들어온 것 같다.”

_미국도 교수 정년을 보장하는 ‘테뉴어’가 있지 않나.

“미국의 ‘테뉴어’ 제도를 우리나라에 잘못 들여왔다. 미국은 100명 교수가 있다면 70명은 테뉴어가 아니다. 우리는 70명은 테뉴어이고, 30명은 테뉴어를 받는 단계에 있는 ‘테뉴어 트랙’에 있다. 미국 교수 70%는 테튜어 트랙이 아니라 아무리 잘해도 계약직이고, 30%만이 테튜어 트랙이거나 테뉴어다.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너무 안주하는 것 같다. 미국에선 정교수 승진할 때 테뉴어 받는데, 그건 교수와 총장 간의 계약이다. ‘당신이 교육과 연구에서 학교를 위해 기여하는 한 대학은 당신을 지켜준다.’는 문구로 되어 있다. (테뉴어를 받아도) 연봉제이기 때문에 성과 평가에서 연봉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건 나가라는 사인이고, 보통 그렇게 되면 나간다. 우리는 그런 계약도 없이 그냥 정년이 보장된다. 그런 불평등한 계약이 어디 있나.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교수는 엉망으로 해도 대학은 65세까지 월급 줘야 된다’는 제도가 어딨나. 그러니까 대선 때마다 1,000~2,000명 교수들이 후보 캠프에 가고, 강의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도덕적 일탈이 벌어진다. 다만 정년보장을 없애기보다는 보수체계를 연봉제로 바꿔, 경쟁을 유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_초등학교와 관련, 학제개편이 이슈화된 바 있다.

“매년 9월에 신학년이 시작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쫒아가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우리가 세계와 담쌓고 우리끼리 산다면, 3월에 입학하든 9월에 하든 문제가 없다. 사실 3월에 신학년이 시작하는 제도는 일본에서 왔다. 일본 제국주의의 그것을 아직도 따르고 있다. 그로 인해 외국 학교와의 교류와 내외국인 학생의 유학 등에서 상당히 불편하다. 5.5세 입학이 맞다고 생각한다. 6개월을 당겨서 9월에 5.5세에 입학하는 게 맞다.”

_전환과정에서 또래보다 어린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는 우려가 있다.

“한꺼번에 바꾸면 안 된다. 5.5세로의 전환을 6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하면 된다. 1년에 한 달씩 간다면,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예컨대 첫해는 3월 시작해서 다음 해 1월에 끝내는 거다. 12개월 교육과정을 11개월에 마치는 건 큰 문제없다. 다음에는 2월에 입학하고, 그다음에는 1월에 입학하는 식으로 조정하면 6년 뒤에는 저절로 9월에 다 입학해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걸 한 정부에서 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_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방대가 많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퇴출이 능사는 아니다. 지역 대학을 없애면, 젊은이가 사라져 지역유지가 안 된다. 지방이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젊은이가 있어야 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 지원해 유지해야 한다. 우리 대학은 대부분 사립이다. 일본이나 우리는 고등학교까지는 공ㆍ사립 가리지 않고 교사 봉급을 100% 국가가 준다. 일본은 전국 사립대 교수들의 봉급도 절반을 국가가 대준다. 교육이라는 차원에서는 고교나 대학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학 교육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교육부는 ‘당신들이 혁신해야 돈을 지원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지방대학은 일어설 힘도 없다. 무조건 지원부터 해야 된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경기고, 서울대 재료공학과, 한국과학기술원 석사,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제1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뒤 울산대 총장, 포항공대 총장으로 일했다. 서울대 명예 교수와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글 싣는 순서

1.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2.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3.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4.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5.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대담=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정리=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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