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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사태'가 흔든 법치와 공정

입력
2024.03.1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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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사 임명, 의혹해소보다 급한 이유 뭔가
불리한 정권심판, 검찰독재 프레임만 소환
늦지 않게 공정 의지 다지고 납득할 조치 해야


작년 9월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작년 9월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지표 첫 번째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사회다. 이 상식에 어떤 것이든 부합하려면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용산의 최근 행보는 설명도, 납득도 어려워 윤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과 법치가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집중호우 때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은 불행한 사건이다. 누구를 편들자고 이 죽음의 과정에 대한 수사에 행사된 외압 의혹을 밝혀내자는 게 아니다. 야당처럼 사생결단하듯 특검부터 꺼내 충돌할 일 역시 아니다. 순리대로 수사를 맡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납득 가능한 수준까지 드러내면 될 일이다. 최소한의 그런 조치도 않고서야 어떻게 병사들에게 목숨을 내놓으라는 애국적 헌신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억울한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해도 모자랄 판에 사람들 가슴에 대못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법대로 하자며 ‘법법’ 하면서 정작 법을 경시하는 곳이 정치이긴 하다. 채 한 달이 남지 않은 4·10 총선을 앞두고도 우리 사회의 불공정, 부정의를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적대적 공존 관계의 여야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으로 미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정치는 공정, 정의에 대한 믿음조차 비극으로 만들고 있다.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이종섭 사태’를 하나씩 뜯어보면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 적지 않다. 호주 대사로 보낼 사람이 없어서 이 전 국방부 장관을 보내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를 콕 찍어 보낸 것도 양국 군사교류 강화란 이유만으론 부족하다. 수사 진척, 향후 조사수순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모면성 인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이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 과정도 공정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는 하루 만에 사단장 보직해임 결재를 바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이고, 이 혐의가 직권남용으로 인정되면 신병확보가 불가피할 수 있다. 윤 대통령도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다수의 피의자를 직권남용으로 사법처리한 만큼 모를 리 없다. 언제든 소환에 응하겠다는 다짐만으로 출금을 풀어줄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기소 가능성을 따져볼 피의자를 3년 임기 대사로 내보내는 것을 납득하긴 어렵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조작 사건과 관련해 수집된 정보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던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안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특명전권대사와 전직 장관의 신분은 사법처리 수위에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똥이 용산으로 튀는 걸 막으려는 의도가 이런 전반의 과정에 작용하지 않았냐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것이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공정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5년 전 조국 사태가 공정의 문제로 시작됐다면 이번 사태는 공정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춰내고 있다. 때맞춰 정권심판론, 검찰독재 프레임이 소환되는 게 그 증거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맞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항해 윤석열 검찰이 조국 수사를 강행했을 때 국민들은 우리 사회에 법치가 살아 있음을 체감했다. 그랬던 법치가 이제 검사일 때 다르고 정치인일 때 다른 것이라면 내 편 네 편 논리만 합리화하는 반쪽 정의에 불과하다. '법대로'가 법을 아는 엘리트들에게 법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고, 특정인에게 유리한 것이라면 법치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금이라도 공정 의지를 확인하고 납득할 조치를 한다면 윤 정부의 정당성은 공고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의 부력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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