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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도 핵 믿다 망했다. 김정은의 '북핵 딜레마' 파고들어야"

입력
2024.08.23 11: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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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의 이슈메이커]
러시아 연구한 하용출 워싱턴주립대 교수
"북핵에 맞서 핵무장하자는 건 어리석은 이야기
냉전 때 소련은 미국과 '핵 등가성'만 믿다가 망해
핵 자랑하는 김정은이 마주한 핵 딜레마 활용해야"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은 하용출 워싱턴주립대 교수가 최근 국제 정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은 하용출 워싱턴주립대 교수가 최근 국제 정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한반도 비핵화요? 사실상 지나간 얘기가 됐죠. 북한은 이미 핵무장을 했다고 봐야죠. 앞으로 협상한다면 핵 협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핵을 군사적으로만 보면 '남한도 핵무장하자'는 식의 결론밖에 안 나와요. 그보다는 북핵 딜레마를 파고들 외교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온 국민이 습기 가득한 폭염에 지쳤다지만 여전히 서늘한 단어가 있다. 바로 북핵.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립된 러시아가 북한을 끌어들였고 이로 인해 북핵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둔 미국 민주·공화 양당은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을뿐더러, 올해 을지연습에선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훈련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용출(74)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연구소장을 최근 만났다. 러시아 정치를 전공한 하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21년간 재직했고, 2008년 워싱턴대로 자리를 옮겨 지금도 연구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현역' 교수다.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


지금은 '신냉전'보다 '지정학'의 시대

-요즘 '북중러 vs 한미일' 대립이 도드라지면서 '신냉전'이란 말이 나돈다. 신냉전이 맞나.

"냉전은 이데올로기에 따른 양 진영 간 대결인데,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미국이 예전 같지 않다.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가장 큰 관심은 자국의 경제 회복 내지 중산층 복원이다. 20여 년간 미국 외교협회장을 지낸 리처드 하스가 '이제 미국의 모든 외교 정책은 국내 문제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표현에 동의한다. 지금의 미국은 자기들 문제에 신경 쓰느라 바쁘다."

조 바이든(왼쪽)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프린스조지스카운티에서 열린 대선 유세 행사장에 함께 등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프린스조지스카운티=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프린스조지스카운티에서 열린 대선 유세 행사장에 함께 등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프린스조지스카운티=EPA 연합뉴스

-진영 리더십이 부실한 셈인가.

"제3세계도 달라졌다. 냉전시기 제3세계는 경제적으로 가난했고,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그래서 이념에 따랐고 조정과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 불리는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을 보라. 예전 같은 제3세계가 아니다. 자유주의 같은 이념적 정렬을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식민 역사에 대한 보상까지 서구에 요구한다. 최근 글로벌사우스 몇 개국이 중국을 찾았는데, 그들 발언을 보면 그야말로 울분에 가득 차 있다."

-그간 바이든 정부는 '가치 외교'를 내세웠고, 한국은 이에 동조해왔는데.

"미국이 그래오긴 했는데, 내가 보기엔 현실과 격차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냉전이라기보다 그 이전의 훨씬 더 복잡한 지정학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이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의 관리 측면의 실수이기도 하다."


냉전 이후 미국은 러시아 관리에 실패했다

-어떤 실수인가.

"냉전 붕괴 이후 소련은 15개 연방국가로 해체됐다. 안 그래도 서구에 뒤처져 있다 생각하는 러시아가 앞으로 더 심각한 열등감을 느낄 것이라고, 관리해야 한다는 경고가 잇따랐는데 관리가 없었다. 미국은 너무 단순하게 러시아를 싹 무시하고 중국으로 넘어가버렸다. 중국이 잘 성장하면 자유화될 것이고 자연스레 미국 우산 아래 들어오리라 지나치게 낙관했다. 냉전 붕괴 이후, '자유주의의 오만' 혹은 '미국의 오만'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 미국이 이를 놓친 셈이다."

우크라이나에 역습을 당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우크라이나에 역습을 당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를 어떻게 관리했어야 했을까.

"지금도 러시아 쪽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그들은 유라시아적 접근 방식, 그러니까 '서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쪽의 캄차카 반도까지'를 기준으로 생각한다. '이제 그런 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 물론 자신들도 그게 현실과 다르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더 절망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러시아에 대고 나토의 동진, 오렌지 혁명 이런 걸 들이대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당하다는 것이냐'는 반론이 나온다.

"절대 아니다. 두 문제는 구분해 봐야 한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바로 턱밑에까지 들어온 단검이라 여긴다. 헨리 키신저 같은 여러 전략가들이 러시아의 지역 기득권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얘기해온 이유다. 러시아의 침공은 당연히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미국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는다."

북러 밀착은 일시적 ... 결국 대미 협상이 관건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버텨내더니 되레 러시아 본토로 밀고 들어갔다.

"그래서 푸틴이 곤혹스러운 거다. 우크라이나 침공엔 러시아의 국내적 요인도 있다. 장기집권에 따른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빨리 치고 빠져야 하는데 지금 발목이 잡힌 셈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측 모두 더 적극적으로 맞붙어 결론을 내지 못하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제한적인 형태의 전쟁, 그리고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전쟁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은 미국 등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기 위한 측면이 크다. 또한 11월 미 대선 이후 전쟁을 종결하려는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했다. 군사동맹 수준의 협약도 체결하고.

"상황에 따른 편의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러시아는 무기가, 북한은 돈이 필요하니까. 북한 쪽과 접촉하는 일본 측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북한 또한 '러시아와는 단기적 관계, 중장기적 관계는 결국 미국'이라고 말한다 한다. 대미관계가 핵심이란 걸 북한도 아는 거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미북 직접 협상이 실패한 상황을 감안하면, 남한이 지금처럼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할 필요는 없다. 일본과 긴밀히 협조해 북한을 어떻게 끌어낼까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만났다. 뉴욕=AP 연합뉴스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만났다. 뉴욕=AP 연합뉴스

-일본 역할론인가. 아시다시피 일본에 대한 반감은 강하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에 실패했고 남한과는 적대적이다. 한국은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한다 했지만 북한은 중국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반면 일본은 미중수교로 이어진 1970년대 데탕트 국면에서 미국에 소외당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긴다. 북한 문제에선 그런 꼴을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여건을 감안하면 일본은 북한과 미국이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통로 중 하나가 된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 관계개선은 필요하다. 실제 핵 협상이 진행된다 해도 그렇다. 역사적 질문을 잊어선 안 되겠지만 감정적 반일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북핵도 협상카드일 뿐 ... 그게 김정은의 딜레마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 없이, 또 그것과 무관하게 지나치게 일본에 숙이는 느낌이다.

"지금 정부가 그런 깊은 고민과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국민적 이해를 미리 구해두는 건 필요해 보인다."

-이러다 북핵 문제는 영원히 안 풀리는 게 아닌가. 바이든 정부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 북핵을 너무 군사적 의미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군사적으로만 보면 무섭다. 그러니 철저히 대비하자, 맞서 싸우자는 결론으로만 간다. 그런데 과거 역사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망한 게 결국 핵 때문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하노이=로이터 자료사진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하노이=로이터 자료사진

-무슨 의미인지.

"1969년에서 1972년 즈음에 이르러서 소련은 스스로 미국과 대등하다고 평가했다. 우리도 핵을 개발하고 배치했으니 미국과 맞먹는다는 이른바 '핵 등가성'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그 생각 때문에 국내 개혁을 등한시했고 결국 소련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고 나는 본다. 김정은도 매한가지다. 스스로 핵국가라 선언하고, 헌법도 고치고, 어떤 핵무기를 어떻게 쓰겠다 같은 얘기도 거침없이 내놓는다. 핵무기 개발이 그런 방식으로 체제의 안정감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 게 문제다. 미국과 협상이 안 되면 핵이 무슨 소용인가. 국내외적인 정치적 효용성 측면에서 보자면 북핵은 이미 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우리는 북핵이 가진, 김정은이 맞닥뜨린 이런 딜레마를 파고들어야 한다."


미국 뒤에만 서 있으면 외교는 필요 없다

-만에 하나라도 북은 핵을 쓸 수 있을까.

"물론 군사적으로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핵을 쓰는 순간 자기네가 끝장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쓰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미국 대선 이후도 궁금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민주당 쪽보다는 차라리 도널드 트럼프가 낫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다.

"지금까지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다. 다만 트럼프 또한 지난번에 실패했다. 대통령이 돼 다시 협상한다 해도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지난 집권기에 트럼프는 미국 내 외교안보 쪽 신뢰를 많이 잃었다. 얼마나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지, 지지를 받아낼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하용출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한국만의 역사적 경험을 살린 외교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하용출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한국만의 역사적 경험을 살린 외교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한국 외교가 너무 미국으로 기울어졌다는 평가다.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점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식민지, 산업화, 민주화 경험이 있는 독특한 국가다.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국가가 없다. 한국 근대화의 경험에 기초한 한국의 정체성을 외교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 식민 역사가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공감해 줄 수 있고, 중국엔 우리의 민주화 경험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냥 미국과 일본 뒤에 가만히 서 있겠다면 외교라는 게 필요 없다.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목소리를 낸다는 걸 자꾸 보여줄 필요는 있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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