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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을 이기는 일상의 지평선

입력
2024.12.13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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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된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자료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된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자료 인터스텔라

‘편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 지평선(地平線)의 사전적 정의다. 은유적으로는 특정 세계나 사상 혹은 개념이 영향을 미치는 한계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한국일보가 1954년 6월 9일 자 창간호부터 쉼 없이 게재해온 칼럼 이름을 ‘지평선’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대 상황의 인식과 비판에서 최대한의 공평무사와 통찰력을 쏟아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지리학에서 태동한 지평선 개념이 21세기에는 물리학으로 옮겨갔다. 블랙홀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건의 지평선’이 그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2014)에서는 블랙홀 중심 부분이 짙은 검은색으로 표현되는데, 이를 천문학에서는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강한 중력에 의해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에서 내부 물질이나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한계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는 ‘12·3 불법계엄’ 사태는 한국 사회에 나쁜 지평선을 드리우고 있다. ‘계엄의 지평선’으로 다양한 연말 활동과 행사가 ‘올 스톱’됐다. 무역의날(12월 5일) 행사가 대표적이다. 1964년 수출입국(輸出立國)을 선언한 이후 쉼 없이 열렸던 기념식이 무산됐다. 주요 단체와 기관들이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전망하려던 행사들도 멈췄다. 잇단 취소에 따른 부가가치 손해보다 심각한 건 움츠러든 소비 심리다. 냉랭한 분위기 탓에 일반 시민마저 송년모임 계획을 거둬들이고 있다.

□1,425만 명 관객을 모았던 영화 '국제시장'(2014)에서 남편과 딸을 잃고도 슬픈 내색도 없이 삶을 이어가는 덕수 엄마(장영남 분)는 이렇게 말한다. “내는 시방 너와 네 동생을 돌봐야 한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우상향 추세를 유지하는 이유다. 분노는 하되, 일상도 이어져야 한다. 시민들은 멈추려던 행사를 계속해야 한다. 대통령이 불참한 자리에는 막대기라도 세워 놓고, 예정대로 행사를 치르자.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공직자와 정치인은 일과 후에는 여느 연말과 똑같이 웃고 즐기자. 야당은 감액 예산을 보충할 추경을 지금부터 준비하라. 시민의 삶은 계속돼야 하고, 일상의 지평선은 계엄의 지평선을 덮어야 한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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