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항해사 꿈키우던 섬소년/장애절망딛고 「금」셋 항해/“사회편견 벗는것이 가장 고통/패들젓다 목놓아 운적 많았다”『장애자라는 사실이 결코 나의 인생에 장애기 된적은 없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저에게 불구자의 굴레를 씌우려하는 세상사람들의 사시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정상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채찍질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5일 북경아시안게임 카누경기에서 한국의 유일한 3관왕을 차지한 천인식선수(22ㆍ한국체대)는 맺힌설움이 터져나오려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천선수가 따낸 금 3개는 좌절을 딛고 인생에 대한 피나는 도전과 극복의 과정속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천금의 무게를 갖고있다.
경남 통영군 산양면 한 갯마을에서 태어난 천선수는 어렸을때엔 5대양을 누비는 일등항해사가 꿈이었다.
그러나 통영군 조양국민학교 1학년때 갑자기 엄습한 소아마비증세는 그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갔고 어린 그가 감당하기는 힘든 불구자의 굴레를 씌워버렸다.
통영중학에 진학한뒤 신체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배구를 해보기도 했지만 무리였다.
좌절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부산 해양고에 진학,조정부에 들어갔으나 좌절은 깊어만 갔다.
양다리와 팔을 동시에 사용하는 조정경기에서 양다리의 길이가 서로 다른 그가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이 들었던 것.
절망에 빠져있던 그에게 당시 해양고 문병섭코치는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라며 팔힘을 주로 사용하는 카누로 전향해 볼것을 권했다.
문코치의 이 한마디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시」였으며 힘을 얻은 그는 하루 6시간의 강훈끝에 고3 때인 86년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다.
집념은 이에 그치지않았다. 그해 일본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카약 1인승 1천m경기서 4분5초의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며 국내 카누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대회서 금을 캐냈고 89인도네시아 아시아선수권대회서도 우승하며 명실공히 한국카누의 간판스타로 발돋움했다.
『패들을 젓다 부르튼 손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목놓아 운적도 많았다』고 회고하는 천선수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물속에 빠져 죽을 수는 있어도 금을 놓칠 수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었다.
아시안게임사상 최초로 카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번대회서 천선수는 카약 1인승 1천m서 첫금을 캐낸후 한시간 간격으로 벌어진 카약 2인승 1천m와 카약 2인승 5백m에 출전,한국선수로는 처음이자 유일한 3관왕에 올랐다.
통영에서 1.5톤짜리 작은 어선으로 생계를 꾸려가고있는 부모 슬하 4남4녀중 막내인 천선수의 이번 승리는 신체장애를 극복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소산으로 수많은 장애인들의 희망이 될것이 틀림없다.
천선수는 이날 금메달획득으로 신태호카누연맹회장의 약속대로 스쿠프승용차 1대를 장만하게되는 행운도 잡았다.<조재우기자>조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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